상영중인 신의 악단, 주말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명장면

어제는 유난히 몸이 무거운 월요일이었어요. 퇴근길에 아파트 단지 상가에 새로 생긴 붕어빵 트럭에서 천 원어치를 샀는데, 사장님이 "오늘 마지막 손님이네"라며 덤으로 하나를 더 얹어주시더라고요. 종이봉투 틈새로 새어 나오는 그 달콤하고 따뜻한 온기를 손에 꼭 쥐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소한 다정함 하나로도 마음이 녹는데, 정말 극한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무엇에 기대어 하루를 버틸까?' 하고요.

방 안으로 들어와 젖은 외투를 벗어두고, 주말에 다 못 보고 미뤄뒀던 영화 <신의악단>을 다시 재생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를 왜 보게 됐냐면요, 처음엔 그저 '북한에서 찬양단을 만든다'는 설정이 너무 황당해서 호기심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황당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제 마음속에 아주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툭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붕어빵은 이미 식어버렸지만, 영화가 주는 열기 때문에 한동안 소파에서 일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주말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명장면, 그리고 씁쓸한 현실의 잔상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 박교순(박시후 분) 소좌가 단원들을 몰아붙이며 '은혜'라는 곡을 북한식 혁명가요처럼 마개조해서 부르게 하는 대목이었어요. "전투적으로! 속도전으로!"를 외치는 그 모습이 처음엔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곧바로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가짜로 시작한 노래지만, 그 가사 하나하나가 단원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조금씩 긁어내는 게 화면 너머로도 느껴졌거든요.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인물들의 눈동자에 서린 그 비릿한 공포와 희망을 훔쳐보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몽골의 끝없는 설원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찬양 소리는, 마치 텅 빈 내 마음속에 누군가 억지로 불을 지피는 것 같은 생경한 통증을 안겨주었습니다.

가짜로 시작된 노래가 나의 '진짜' 상처를 건드릴 때

영화 속 박교순 소좌가 과거 자신의 고발로 어머니를 잃고 사촌 형까지 처단했다는 고백을 할 때, 저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을까요. 사소한 오해로 정말 아끼던 친구와 크게 다투고는 "다시는 안 봐"라며 모진 말을 내뱉었던 제 모습이 겹쳐 보였거든요. 박교순의 죄책감에 비하면 제 고민은 아주 사소한 투정이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주는 그 지독한 무게만큼은 소름 돋게 닮아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지옥' 하나쯤은 품고 살잖아요. 영화 속 단원들이 살아남기 위해 입을 맞추고 화음을 쌓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일매일 연기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특히 정진운 배우가 연기한 김태성이 눈 덮인 벌판에서 '광야를 지나며'를 부르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어요.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이라는 가사가 터져 나올 때, 저는 노트북 화면을 잠시 멈췄습니다. 사실 제가 요즘 하는 일이 제 적성에 맞는지,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고민이 많아서 밤마다 잠을 좀 설쳤거든요. 그런데 그 절박한 노랫소리가 꼭 저한테 "너도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는 거야, 조금만 더 버텨봐"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아서 주책맞게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식어버린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그 단맛이 왠지 모르게 짠맛처럼 느껴지는 밤이었습니다.

예술단은 외화벌이 도구? 영화보다 더 기이한 북한의 현실

국가 대표 공연단 이미지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지점이 하나 생깁니다. "에이, 아무리 영화라지만 북한에서 저런 찬양단을 만든다는 게 말이 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실제 북한의 시스템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영화의 설정이 마냥 허구로만 보이지 않더라고요.

북한은 오래전부터 이른바 '예술단'을 국가의 아주 중요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란봉악단이나 은하수관현악단, 그리고 만수대예술단 같은 조직들이 대표적이죠. 이들은 단순히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화 외교 사절단'이자, 동시에 해외 공연을 통해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는 '국가 프로젝트 팀'입니다. 실제로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의 북한 식당이나 극장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하며 수익을 올리는 구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재미있는 건, 이들이 보여주는 무대가 철저하게 기획된 '쇼'라는 점입니다. 영화 속 박교순 소좌가 단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세뇌하는 모습은 현실 속 북한 예술단원들이 겪는 통제와 거의 흡사하다고 해요. 국가를 위해 예술마저 도구화하는 그들의 정교한 시스템을 생각하면, "국제사회의 지원을 얻기 위해 가짜 찬양단을 만든다"는 영화적 상상력이 사실은 북한이 수십 년간 해온 '문화 외교'의 극단적인 변주곡처럼 느껴져서 소름이 돋습니다. 실화 바탕이라는 말의 무게가 여기서 다시 한번 느껴지더라고요.

밤이 아주 깊었네요.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어보니 시원한 공기가 들어옵니다. 영화 속 그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그 평범한 공기가, 사실 우리에겐 이렇게나 가깝고 흔하다는 게 새삼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내일 아침 출근길엔 이어폰으로 영화에 나왔던 '주 예수 나의 산 소망'을 한 번 찾아 들어보려고요.

요즘 삶이 퍽퍽하고 누군가에게 진심을 전하는 게 겁이 난다면, 여러분도 이 영화를 한 번쯤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줄거리가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영상미나 노래에 취해버릴지도 모르지만, 극장을 나설 때쯤엔 가슴 속에 작은 온기 하나는 분명히 품고 나오게 될 테니까요. 제가 오늘 붕어빵 한 봉지에 행복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제 일기장을 덮고, 저도 이만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다들 평안한 밤 되세요.

영화관 문을 나설 때 들려온 이름 없는 이들의 목소리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는 불 꺼진 거실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속 마지막 무대였던 'Way Maker'의 선율이 귓가에 쟁쟁하게 남아서였죠. 박교순 소좌가 단원들을 탈북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그 마지막 선택을 보며, "나는 과연 누군가를 위해 내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나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평소엔 그냥 지나쳤던 길가의 작은 꽃들이나 편의점 사장님의 따뜻한 인사 같은 것들이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희생과 다정함이 우리 삶의 길을 만들고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궁금해지네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어떤 화음으로 채워졌나요? 혹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소리 내어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계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영화 속 단원들이 가짜 노래 속에서 진짜 위로를 찾아냈던 것처럼, 여러분의 고단한 하루 끝에도 아주 사소하지만 확실한 '구원' 같은 순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조금 오글거리긴 하네요. 하지만 진심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