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갑 속의 보이지 않는 균열, 영화 '비트코인 혁명'을 마주하며
어제는 유난히 외근이 길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광역버스 뒷자리에 몸을 구겼습니다. 창밖으로 경기도 외곽의 아파트 단지 불빛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데, 문득 저 수많은 집 중에 내 이름으로 된 공간은 단 한 평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툭 치더라고요. 사실 제가 오늘 기분이 좀 가라앉았던 건, 낮에 은행에 들렀다가 본사 지침이라며 대출 연장이 어렵다는 차가운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담당 직원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그 뒤에 있는 거대한 시스템은 저라는 개인의 사정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게 뼈아프게 다가왔거든요. 그래서인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겉옷도 벗지 않은 채 거실 구석에 앉아 무작정 이 다큐멘터리 '비트코인 혁명(Banking on Bitcoin)'을 틀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비트코인이니 블록체인이니 하는 단어들만 들으면 머리부터 지끈거리는 사람입니다. 왠지 똑똑한 사람들이 남들을 속여서 돈을 가로채는 도구 같기도 했고, 실체 없는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는 편견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시작부터 제 뒤통수를 때리더라고요. "우리는 왜 얼굴도 모르는 은행가를 신뢰하는가?"라는 아주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죠. 영화 속 인물들이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무너진 금융 시스템을 보며 분노하는 장면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낮에 만난 은행 직원의 무표정한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비트코인이 단순히 투기 수단이 아니라,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아주 처절한 몸부림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스마트폰에 깔린 은행 앱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우리가 땀 흘려 번 돈을 관리해주겠다며 수수료를 떼어가고, 정작 위기가 닥치면 국가의 세금으로 자신들만 살아남는 그 모순적인 풍경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졌거든요. 물론 비트코인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영화를 다 본 지금도 100% 확신이 서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