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라는 이름의 독기 내 삶의 '스피디 시스템'은 어디에, 영화 파운더

영화 파운더 포스터 이미지


무자비한 성공의 맛, 햄버거 너머의 차가운 자본주의를 맛보다

어제 퇴근길에 집 앞 맥도날드 매장을 지나치는데, 평소엔 신경도 안 쓰던 노란색 'M' 자 로고가 유독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비가 와서 창문 여는 소리가 들리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마음이 참 싱숭생숭했습니다. 사실 지난주에 믿었던 동료와 사소한 오해로 다투고 아직 화해를 못 했거든요.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내 이익만 챙겼나' 하는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더라고요. 그런 복잡한 기분으로 주말 아침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다 밀어 넣고 소파에 앉아 고른 영화가 바로 <파운더>였습니다.

이 영화를 왜 보게 됐냐면요, 사실 맥도날드 하면 떠오르는 따뜻하고 친근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진짜 탄생 비화'가 궁금했거든요. 우리가 흔히 먹는 빅맥 하나에 얼마나 지독한 비즈니스의 세계가 녹아있는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햄버거 생각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대신 입안에 씁쓸한 기운만 가득 남았습니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레이 크록의 그 광기 어린 눈빛을 보면서, 성공이라는 게 과연 무엇을 먹고 자라는 괴물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됐거든요. 사실 영화 중반에는 레이의 끈기에 감탄하다가도, 후반부로 갈수록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맥주 캔을 꽉 쥐게 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끈기라는 이름의 독기, 내 삶의 '스피디 시스템'은 어디에

영화 속 레이 크록은 52세의 나이에 믹서기나 팔러 다니는 별 볼 일 없는 세일즈맨이었습니다. 그런데 샌버나디노의 작은 매장에서 맥도날드 형제가 만든 '스피디 시스템'을 보고 인생을 걸기로 하죠. 30초 만에 나오는 햄버거, 종이 봉투에 담긴 간편함... 그 혁신을 알아보는 선구안 하나는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이걸 보면서 저는 작년 여름 우리 집 천장이 샜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 윗집이랑 보상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면서 느낀 건데, 세상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보다 목소리 크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결국 이기더라고요. 레이 크록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죠.

맥도날드 형제인 딕과 모리스는 정말 순수했습니다. 품질을 지키기 위해 밀크셰이크 가루 사용을 거부하고, 메뉴 하나하나에 장인 정신을 담았죠. 하지만 레이는 달랐습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냉혹해져야 한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더라고요. 사실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어떻게 같이 꿈을 꾸던 파트너를 저렇게 잔인하게 쳐낼 수 있을까 싶어서요. 저도 예전에 작은 프로젝트를 할 때 제 아이디어를 교묘하게 자기 것처럼 포장해서 보고하던 선배가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배신감이 영화 속 형제들의 표정에서 읽혀서 가슴이 아릿했습니다.

레이가 부동산 회사를 차려서 가맹점의 땅을 직접 사들이기 시작할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당신은 햄버거를 파는 게 아니라 부동산 사업을 하는 거야"라는 조언을 듣고 각성하는 장면 말이에요. 본질보다 구조를 장악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열심히 하면 보상받는다"고 배우지만, 현실은 레이 크록처럼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내고 타인의 성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정점에 서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 냉혹한 현실이 제가 지난주 동료와 다퉜던 그 찝찝한 상황과 겹쳐 보여서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파운더'라는 타이틀의 무게, 여러분은 무엇을 버리실 건가요?

영화가 끝나고 가장 강렬하게 남은 여운은 마지막 장면에서 레이 크록이 거울을 보며 연설문을 연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맥도날드 형제에게 로열티 한 푼 주지 않고 브랜드를 뺏어오죠. 심지어 형제들이 운영하던 1호점 바로 앞에 맥도날드 매장을 내서 그들을 망하게 합니다. 정말 무자비하더라고요. "비즈니스는 전쟁이다"라는 말을 이보다 더 처절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영화 제목인 <파운더(Founder)>는 설립자라는 뜻도 있지만, '좌초하다'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있다고 해요. 레이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지만,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나 조강지처와의 신뢰 같은 건 완전히 좌초시켜 버렸죠.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성공을 위해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반대로, 원칙을 지키느라 눈앞의 기회를 놓치고 밤잠을 설친 적은요? 저는 맥도날드 형제의 허망한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약 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더라고요. 사실 줄거리가 잘 기억 안 날 정도로 레이의 탐욕스러운 연설에 압도당했었지만, 결국 제 마음이 기운 곳은 이름마저 뺏긴 형제들의 초라한 주방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레이 크록의 승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추악한 약탈이라고 보시나요?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늘 '끈기'와 '열정'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영화 속 레이처럼 누군가의 눈물과 계약서의 빈틈을 이용한 계산이 깔려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햄버거가 사실은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집어삼킨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참 서글프게 다가오더라고요. 저는 오늘 저녁엔 맥도날드 대신 집 근처에 있는, 조금 느려도 주인아저씨가 정성껏 구워주는 이름 없는 수제버거 집에 가보려 합니다. 그곳에선 레이 크록 같은 무자비함보다는 맥도날드 형제가 처음 가졌던 그 순수한 열정을 맛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부동산이 햄버거를 이긴 순간, 맥도날드 제국의 숨겨진 팩트

영화 <파운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철저하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기록물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한 과정은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히죠. 특히 영화에서 강조된 '부동산 전략'은 오늘날 맥도날드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한 기업 중 하나가 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해리 소너본(Harry Sonneborn)이라는 재무 전문가가 레이에게 건넨 "당신은 부동산 사업을 하는 것"이라는 조언은 맥도날드의 운명을 바꾼 실제 팩트입니다. 가맹점주에게 임대료를 받음으로써 본사가 절대적인 통제권을 갖게 된 시스템이죠.

흥미로운 점은 맥도날드 형제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1.9%의 로열티 구두 합의입니다. 레이 크록은 이 약속을 서류로 남기지 않았고, 결국 형제들은 한 푼의 로열티도 받지 못했습니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매년 수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하니, 계약서 한 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영화를 연출한 존 리 행콕 감독은 레이 크록을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고 해요. 마이클 키튼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서 가끔 그에게 감정 이입이 되기도 하지만, 카메라는 시종일관 레이의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비춥니다. 맥도날드 형제의 실제 후손들은 영화가 개봉한 뒤 "할아버지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세상에 알려져서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니, 영화가 가진 진실의 힘이 꽤 컸던 모양입니다.

글을 다 쓰고 나니 빨래가 다 돌아갔다는 알림음이 울리네요. 세탁기에서 막 꺼낸 옷가지들의 온기가 방금 본 영화의 차가운 정서와 대비되어 묘하게 위로가 됩니다. 레이 크록처럼 거대한 제국을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내 곁의 사람들과 소박한 진심을 나누며 사는 게 진짜 'Founder'로서의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내일은 출근해서 지난주에 다퉜던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려 합니다. 레이 크록 같은 무자비한 승리보다는, 조금 손해보더라도 "우리가 같이 만든 거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여러분의 삶에도 '스피디 시스템'보다는 서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온기'가 더 가득하길 바랍니다. 비는 이제 그쳤네요.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좀 마셔야겠습니다. 자, 그럼 전 이제 빨래 널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