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썩은 귤 봉투와 월스트리트의 폭탄 돌리기

 
영화 마진콜 포스터 이미지


오늘 제 기분은 꼭 고장 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처럼 답답하고 먹먹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안에서는 숫자가 엉키고 설켜서 도무지 정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상태 있잖아요. 사실 어제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서 네 캔에 만원 하는 맥주를 사 왔거든요.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쌉싸름한 에일 맥주를 골랐는데, 그게 왠지 제 일상의 텁텁함이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나 봐요. 씻지도 않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맥주 캔을 따는데, 문득 벽에 걸린 시계 소리가 평소보다 유난히 크게 들리더라고요. 째깍거리는 소리가 꼭 누군가 제 뒤를 바짝 쫓아오는 것 같아서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이 영화,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을 왜 다시 보게 됐냐면요. 사실 지난주에 아주 사소하지만 기분 나쁜 일이 있었거든요. 오랫동안 믿고 거래하던 단골 과일 가게 사장님이 귤 한 봉지를 덤으로 주시길래 기분 좋게 집에 왔는데, 막상 열어보니 밑바닥에 있는 귤들이 다 곰팡이가 피어 있더라고요. "좋은 거니까 가져가"라며 웃던 사장님의 얼굴과 그 썩은 귤들이 겹쳐 보이면서, 인간의 신뢰라는 게 얼마나 얇은 유리판 같은지 새삼 깨달았거든요. 그 찝찝한 마음을 안고 주말 아침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다 밀어 넣고는,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이 영화를 다시 틀게 됐습니다.

사실 영화 초반부는 줄거리가 잘 기억 안 날 정도로 배우들의 표정에 압도당해 있었습니다. 케빈 스페이시의 그 지친 눈빛과 제러미 아이언스의 서늘한 카리스마만 보고 있어도 107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잘 이해가 안 가요. 그 똑똑하다는 MIT 박사 출신 피터가 숫자 몇 개를 보고 사색이 되어 상사를 부르는 장면 말이에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모니터 속 숫자일 뿐인데, 그 숫자가 누군가의 집을 뺏고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더라고요. 비가 와서 창문 여는 소리가 들리는 방 안에서 영화를 보고 있자니, 영화 속 빌딩 밖의 고요함이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썩은 귤 봉투와 월스트리트의 폭탄 돌리기

영화 속에서 구조조정으로 제일 먼저 짐을 싸는 에릭 데일(스탠리 투치)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부하 직원 피터에게 USB를 건네며 "조심해(Be careful)"라고 속삭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어릴 적 아버지가 사 오신 붕어빵 봉투의 온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아버지는 늘 퇴근길에 붕어빵을 사 오셨는데, 가끔 봉투 밑바닥이 눅눅하게 젖어 있으면 "이건 아빠가 먹을게, 너희는 바삭한 거 먹어라" 하시며 본인은 눅눅한 걸 고르셨죠. 그런데 이 영화 속 사람들은 정반대예요. 자기가 들고 있는 봉투가 젖어 터질 것 같으니까, 옆 사람에게 환하게 웃으며 그 터지기 일보 직전인 봉투를 팔아치웁니다.

[마진 콜은 주식 시장의 화려한 전광판 뒤편, 그 어두운 복도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거래를 다룹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의 24시간을 다루는데, 영화 내내 나오는 건 회의실과 복도, 그리고 담배 피우는 옥상이 전부예요. 그런데 그 좁은 공간에서 오가는 대화들이 웬만한 액션 영화보다 더 숨 막힙니다. 특히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존 털드 회장이 새벽 4시에 스테이크를 썰며 "아이에게 설명하듯 쉽게 말해봐"라고 주문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어요. 본인은 이 시스템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책임을 숫자에 능통한 젊은 직원에게 떠넘기려는 그 비겁함 말이에요.

작년 여름 우리 집 천장이 샜던 기억이 나네요. 윗집에서 물이 새는 걸 알면서도 "우리 집 문제는 아니다"라고 발뺌하는 바람에 한참을 고생했거든요.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정직하게 자기 자리 지키던 사람들뿐이잖아요.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피터가 발견한 그 엄청난 오류, 즉 회사가 가진 자산이 사실상 '쓰레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영진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시장에 그 쓰레기를 팔아치우기로 결정합니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 전 세계 경제를 지옥으로 밀어 넣는 거죠. 이 과정을 보면서 저는 맥주를 마시다 말고 가슴이 답답해서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밖은 평화로운데, 영화 속 모니터 너머에서는 이미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으니까요.

애완견의 무덤과 우리가 묻어버린 양심들

영화가 끝난 뒤의 여운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씁쓸했습니다. 특히 주인공 샘 로저스(케빈 스페이시)가 30년 넘게 몸담은 회사의 추악한 결정을 따르고 난 뒤, 죽은 애완견을 정원에 묻는 마지막 장면은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그는 평생 숫자를 만지며 살았지만, 정작 자기 집 마당에 개를 묻으면서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웁니다. 어쩌면 그가 묻은 건 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었던 자신의 '인간성'이나 '양심'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조직의 논리나 생존이라는 핑계 아래 소중한 무언가를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버린 적 있으신가요?

사실 영화 중반부에 윌 에머슨(폴 베타니)이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전혀 모른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대사를 듣는데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더라고요. 우리는 아침마다 출근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성실하게 일하며 미래를 꿈꾸지만, 저 높은 빌딩 꼭대기에서는 누군가의 클릭 한 번으로 우리의 노후 자금과 집이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금융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영화가 다 끝나고 세탁기 종료 알림음이 들리는데, 그 소리가 꼭 영화 속 장 마감 알림 소리처럼 들려서 흠칫 놀랐습니다. 젖은 빨래를 하나하나 널면서 생각했어요. 영화 속 존 털드 회장은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는 늘 살아남을 것"이라며 당당하게 식사를 이어가지만, 그 생존이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가끔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돌리고 있는 이 폭탄이 누군가의 손에서 터질지, 그리고 그 폭발이 결국 나에게 어떻게 되돌아올지를요. 영화 '마진 콜'은 그 차가운 진실을 가장 뜨겁게 보여주는 거울 같은 작품이더라고요.

리먼 브라더스의 망령과 리처드 펄드의 그림자

이 영화가 더 소름 끼치는 이유는, 픽션이지만 실제 있었던 역사의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나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으로는 가상의 투자은행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2008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거든요. 특히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존 털드 회장은 당시 리먼 브라더스의 CEO였던 리처드 펄드를 모델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비밀처럼 퍼져 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오만함과 위기 앞에서의 냉정함은 실제 금융 자본가들의 모습과 소름 돋게 닮아 있죠.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의 감독인 J. C. 챈더의 아버지가 실제로 투자은행에서 40년 동안 근무했다는 점이에요.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와 들려주던 월스트리트의 공기를 먹고 자란 셈이죠. 그래서인지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가 단순히 각본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 현장의 생생한 증언처럼 들립니다. 또한 이 영화는 **《빅 쇼트》**나 《인사이드 잡》 같은 다른 금융 영화들과 함께 '금융위기 3대 필독서' 같은 영화로 꼽히기도 해요. 《빅 쇼트》가 화려한 편집으로 시스템의 모순을 풍자한다면, '마진 콜'은 폐쇄된 사무실 안에서 무너져가는 인간의 내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봅니다.

빨래를 다 널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네요.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오늘따라 더 위태로워 보입니다. 요약하자면... 아, 이런 말은 너무 딱딱하죠? 그냥 일기장을 덮듯 혼잣말을 중얼거려 봅니다. "그래도 내일 아침엔 그 과일 가게 사장님께 전화해서 따져야겠다. 곰팡이 핀 귤은 팔면 안 되는 거잖아요."

세상이 아무리 차가운 숫자로 돌아가도, 우리마저 그 숫자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어떤 숫자로 기억되고 있나요? 혹시 누군가에게 '부실 채권' 같은 마음을 전하진 않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