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고장 난 청소기와 50센트의 건전지, 그리고 우리의 서툰 진심

영화 원스 포스터 이미지


오늘 제 기분은 꼭 낡은 기타 줄 하나가 툭 끊어져 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어제 퇴근길에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수입 맥주 네 캔을 만 원에 사 들고 들어왔거든요. 신발도 대충 벗어 던지고 차가운 캔맥주 하나를 따서 들이키는데, 문득 거실 한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방치된 통기타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대학 시절엔 그게 제 전부인 양 끼고 살았는데, 지금은 줄이 녹슬었는지 소리조차 가물가물하네요.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노트북을 열어 무심결에 재생한 영화가 바로 '원스'였습니다.

이 영화를 왜 다시 보게 됐냐면요, 요즘 제가 하는 일들이 다 '수리공'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영화 속 주인공 '그'가 낮에는 아버지를 도와 청소기를 고치고 밤에만 겨우 자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저도 낮에는 남의 비위를 맞추고 서류를 고치는 일을 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겨우 '나'로 돌아오거든요.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창문을 살짝 열어두었는데, 빗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글렌 한사드의 거친 목소리가 제 좁은 자취방 안을 가득 채우더라고요.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가슴이 아릿해요. 그가 거리에서 눈을 감고 온 힘을 다해 "Say It To Me Now"를 내지르는 장면 말이에요. 그건 노래라기보다 차라리 비명에 가까웠거든요.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줄거리가 잘 기억 안 날 정도로 그저 음악에만 취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두 남녀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게 참 묘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냥 '그(Guy)'와 '그녀(Girl)'.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이름 없는 행인 1, 혹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그 무채색 같은 일상 속에서 서로의 '음악'을 알아봐 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맥주 한 모금에 씁쓸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고장 난 청소기와 50센트의 건전지, 그리고 우리의 서툰 진심

영화 속에서 '그녀'가 고장 난 청소기를 질질 끌고 길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을 보는데, 작년 여름 우리 집 세탁기가 고장 나서 빨래방까지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대며 걸어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진짜 덥고 짜증 났거든요. 그런데 영화 속 그녀는 그 무거운 청소기를 끌고 가면서도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여요. 저는 그 청소기가 마치 우리가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니는 삶의 무게처럼 보였어요. 누군가는 청소기를 고쳐야 하고, 누군가는 아이의 저금통을 털어 50센트짜리 건전지를 사야 하는 그 지독하게 현실적인 가난 속에서도, 그들은 음악을 포기하지 않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악기점에서의 합주 장면이죠. 여자가 피아노를 치고 남자가 기타를 잡으며 "Falling Slowly"를 부를 때, 저는 소파에 기대앉아 있다가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잡았습니다. 사실 그 장면은 화려한 조명도, 멋진 무대 의상도 없잖아요. 그냥 점심시간에 잠깐 빌린 피아노와 구멍 난 기타가 전부인데, 그 두 사람의 화음이 섞이는 순간 공기가 바뀌는 게 느껴졌거든요. 지난주에 회사 동료와 업무적으로 크게 부딪히고 나서 "사람은 절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하며 집에 왔던 제 마음이, 그 화음 한 마디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어요.

아, 그리고 그 장면 기억하시나요? 여자가 밤거리를 걸으며 남자의 곡에 가사를 붙여 노래 부르는 장면요. 이어폰을 끼고 혼잣말처럼 흥얼거리는데,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겹쳐지잖아요. 그때 카메라는 여자의 발걸음을 따라 흔들리며 더블린의 밤거리를 비추죠. 저는 그 흔들림이 꼭 우리 인생 같더라고요. 정해진 궤도 없이 흔들리고 불안하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멜로디를 찾아가는 과정 말이에요.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셨던 붕어빵 봉투의 온기가, 사실은 찬 바람 속을 걸어온 아버지의 필사적인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았던 날처럼, 여자의 서툰 노래 가사 속에는 삶을 버텨내는 단단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밀루유 떼베, 전하지 못한 말이 더 아름다운 이유

영화가 끝나고 나면 한동안 멍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둘이 어떻게 됐는데?"라고 묻고 싶은 관객들에게 영화는 아주 담담한 이별을 선물하죠. 남자는 런던으로 떠나고, 여자는 남편과 재결합해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에이, 그래도 둘이 같이 잘됐어야지!"라며 아쉬워한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니, 이런 결말이기에 이 영화가 '진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실의 사랑은 영화처럼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도피가 아니라, 서로에게 피아노 한 대를 선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특히 바닷가에서 여자가 체코어로 "밀루유 떼베(Miluju tebe)"라고 나직하게 읊조리는 장면... 남자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도 여자는 그저 미소만 짓잖아요. 나중에야 그게 "너를 사랑해"라는 뜻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왠지 모를 전율이 돋았습니다. 내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없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고백하는 그 마음. 그건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애정이 아니었을까요?

요즘은 모든 게 너무 빠르고 확실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상이잖아요. "나 너 좋아해, 그러니까 너도 대답해"라고 강요하는 관계들 사이에서, '원스'가 보여주는 이 절제된 감정은 정말 귀한 것 같아요. 꼭 손을 잡고 키스를 해야만 사랑인 건 아니죠. 서로의 상처를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가슴 속 어딘가에 전하지 못한 "밀루유 떼베" 한마디쯤은 품고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은지 궁금해집니다.

13만 유로로 만든 기적, 존 카니가 일궈낸 날 것의 미학

이 영화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가짜'가 하나도 섞이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 '원스'는 제작비가 고작 13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억 8천만 원 정도밖에 안 든 초저예산 독립영화거든요. 요즘 웬만한 상업 영화 홍보비도 안 되는 돈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거머쥐었으니 정말 대단한 일이죠. 감독 존 카니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뮤지션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를 주인공으로 세웠고, 촬영도 세트장 없이 실제 지인들의 집과 더블린 거리에서 자연광만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팩트 하나는, 길거리 버스킹 장면을 찍을 때 엑스트라를 쓸 돈이 없어서 제작진이 멀리서 망원 렌즈로 숨어서 촬영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화면에 나오는 행인들의 반응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시민들의 실제 모습이랍니다. 이런 '날 것'의 느낌이 핸드헬드 카메라의 흔들림과 만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친밀감을 주게 된 거죠.

또한, 이 영화는 보통의 영화들이 이야기를 위해 음악을 도구로 쓰는 것과 반대로, 이미 만들어진 노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짜 맞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실제로 '스웰 시즌'이라는 밴드로 활동하며 만든 곡들이 먼저 있었고, 존 카니 감독은 그 노래들에 담긴 감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들을 고민했죠. 그래서 '원스'의 음악들은 영화 속 상황에 겉돌지 않고 인물의 심장 박동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비전문 배우들이라 대본에 없는 욕설이나 즉흥적인 대사들이 많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사람 냄새' 나는 현실감을 부여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방 안의 빗소리는 잦아들었는데, 제 마음속에는 아직도 "Falling Slowly"의 잔향이 길게 남았습니다. 다 마신 맥주 캔을 분리수거함에 넣고, 오랜만에 기타 케이스의 지퍼를 열어봤어요. 녹슨 줄을 닦아내고 조율을 시작하는데, 한 번에 음이 맞지 않아 몇 번이고 줄을 감았다 풀었다 반복했네요. 우리 인생도 이 기타 줄을 조율하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완벽한 화음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리고 시도하는 그 시간들 말이에요.

이제 영화관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처럼, 아니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내일의 출근길을 준비하는 평범한 직장인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려 봅니다. "그래, 피아노는 없어도 내 목소리는 있으니까." 런던으로 떠난 그처럼, 혹은 더블린에 남은 그녀처럼, 저도 저만의 무대 위에서 내일이라는 노래를 계속 불러보려 합니다.

여러분의 밤도 누군가의 따뜻한 멜로디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도 잊고 지냈던 오랜 꿈이나, 차마 전하지 못한 진심이 있다면 오늘 밤 나지막이 흥얼거려 보는 건 어떨까요? 그 서툰 노래가 누군가에겐 커다란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