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머니, 70조 원이 1조 7천억 원에 팔릴 때, 우리가 잃어버린 '상식'의 값어치, ‘막프로’ 양민혁이 던진 묵직한 질문
70조 원이 1조 7천억 원에 팔릴 때, 우리가 잃어버린 '상식'의 값어치
오늘 제 기분은 마치 꽉 막힌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에게 발을 밟혔는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멍하니 창밖 터널만 바라보는 것처럼 답답함이 가득합니다. 사실 대학교 후배 녀석이 취업 준비가 안 된다며 며칠 전부터 연락을 해왔거든요.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만났는데, 강남역 한복판의 화려한 빌딩 숲을 보며 "선배, 저 저 빌딩들 중 유리창 한 장 값이라도 벌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그 아이의 눈빛이 너무 공허해서 마음이 참 안 좋더라고요. 그 질문이 비단 그 친구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이 영화 <블랙머니>를 선택한 건, 사실 그렇게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아기를 처가댁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노을이 지는 걸 보게 됐는데, 하늘이 평소보다 훨씬 붉더라고요. 그 붉은 빛이 마치 뭔가 터지기 직전의 경고등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집에 들어와 조용한 거실에 앉으니, 문득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사회의 밑바닥엔 대체 어떤 거대한 괴물들이 숨어 있길래 평범한 사람들이 이토록 힘들어하는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조진웅 배우의 묵직한 목소리가 그리워지기도 했고요.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금융 범죄'라고 해서 조금 딱딱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제가 숫자에 참 약하거든요. 예전에 주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매수, 매도 버튼을 헷갈려 했던 기억이 날 정도로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더라고요. 복잡한 수식보다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빚어낸 거대한 사기극을 아주 처절하게 그려내거든요.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어떻게 그 거대한 은행이 헐값에 팔려나가는데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했을까 하는 대목 말이에요. 영화적 각색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죠.
내 누명을 벗으려다 마주한 괴물, ‘막프로’ 양민혁이 던진 묵직한 질문
극 중 양민혁 검사는 검찰 내에서 '막프로'라고 불립니다. 앞뒤 안 가리고 직진하는 성격 탓이죠. 그런데 그가 자신이 심문했던 피의자가 자살하면서 성추행 검사라는 누명을 쓰게 되는 전개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우리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겪을 때가 있잖아요. 지난달 회사에서 제가 하지도 않은 실수를 제 책임으로 몰아가는 상사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나네요. 양민혁이 느꼈을 그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이 남 일 같지 않아 주먹을 꽉 쥐고 보게 되더라고요.
영화는 양민혁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다, 대한은행 헐값 매각이라는 거대한 스캔들을 발견하면서 급물살을 탑니다. 자산가치 70조 원의 은행이 단돈 1조 7천억 원에 넘어가는 말도 안 되는 현실. 그 이면에는 금융감독원, 대형 로펌, 그리고 해외 펀드 회사가 촘촘하게 엮여 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세상은 참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낀 적 있으신가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보다, 서류 몇 장으로 수조 원을 주무르는 사람들이 더 대우받는 걸 볼 때 느껴지는 그 무력감 말이에요.
이하늬 배우가 연기한 김나리라는 캐릭터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엘리트 변호사로서 자신의 신념과 성공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꽤 현실적이었거든요. 처음엔 양민혁과 대립하다가 나중엔 협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자신의 리그'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그 한계를 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 같아도 그런 거대한 이권 앞에서 정의만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런 제 모습이 조금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게 또 평범한 우리네 모습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지워지지 않는 숫자의 잔상, 당신의 양심은 얼마에 매각되었나요?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양민혁이 고군분투하며 진실을 알리려 애쓰는 모습은, 승리라기보다는 처절한 외침에 가까웠거든요.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밖에는 이미 어둠이 깊게 깔려 있었고,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이 유독 차갑게 보였습니다. 저 불빛 하나하나 아래에는 조일현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내일을 걱정하며 잠을 청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러분, 우리는 종종 '돈'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어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은행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내 가치를 증명한다고 믿고, 더 큰 숫자를 위해 작은 양심쯤은 가볍게 무시해버리기도 하죠. 하지만 영화 <블랙머니>는 경고합니다. 그 숫자들이 결국 누군가의 눈물이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사실 줄거리가 잘 기억 안 날 정도로 조진웅 배우의 그 울분 섞인 표정에 취해 있었지만, 그가 전하고자 했던 진심만은 뚜렷하게 남았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들추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검은 돈'의 거래를 향해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고 있죠. 혹시 여러분의 주변에도 양민혁처럼 무모해 보이지만 옳은 길을 가려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면, 혹시 본인이 그런 상황에서 침묵하고 계시지는 않은가요? 저는 글을 쓰며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 역시 그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서, 혹은 방관자로서 '블랙머니'의 흐름에 일조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말이죠.
론스타 게이트,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서늘한 현실의 조각들
영화 <블랙머니>의 힘은 그것이 철저히 실화에 기반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지영 감독은 무려 7년 만의 신작으로 이 소재를 선택하며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론스타 게이트'를 정면으로 응시했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이 지리멸렬한 소송과 비리의 역사를, 감독은 113분이라는 상영 시간 안에 응축해냈죠. 영화 속 대한은행은 실제 외환은행을, 스타펀드는 론스타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가 개봉한 다음 날, 수능 국어 영역 지문으로 BIS(자기자본비율)를 다룬 내용이 출제되었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대한은행의 부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이 BIS 비율이 조작되는 과정이 핵심으로 등장하거든요. 수험생들이 영화를 미리 봤다면 지문을 푸는 데 꽤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영화는 전문적인 금융 지식을 대중의 언어로 아주 쉽게 풀어냈습니다. 이런 점이 바로 <블랙머니>가 단순한 범죄물을 넘어 훌륭한 고발 에세이로 기능하게 하는 힘인 것 같습니다.
또한,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 전작에서도 보여주었듯,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장인입니다. 비록 제작 과정에서 팩트 체크 논란이나 스크린 독과점 이슈 등으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의 묵직함만큼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시작부에 "실제 사건을 영화적으로 각색했다"는 자막이 나오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우리 곁에 엄존한다는 사실이 관객들을 더욱 전율하게 만드는 지점이죠.
이제 글을 마치며, 책상 한구석에 놓인 지갑을 한 번 열어봅니다. 그 안의 몇 장 안 되는 지폐들이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 느껴지네요. 이 돈들이 정직한 땀의 대가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내게 온 것은 아닌지 짧은 성찰을 해봅니다.
영화 속 양민혁이 외쳤던 그 진심 어린 사효(射效)들이, 우리 마음속에 작은 불씨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아침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며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계좌의 숫자가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과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라는 것을요. 자, 이제 저도 아기를 데리러 갈 시간이네요. 어두운 밤길이지만, 오늘 본 영화 덕분에 마음 한구석은 묘한 뜨거움으로 채워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밤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