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의 노역과 내 마음속의 낡은 번호표, 레미제라블

영화 레미제라블 포스터 이미지



빵 한 조각의 무게와 은촛대의 용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내일의 노래

오늘은 유난히 무릎이 시리더라고요.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걸 보니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 싶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아 오전 내내 침대에서 뒹굴거렸습니다. 주말 아침이라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다 밀어 넣고 탈수 돌아가는 진동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참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내 손에 남은 건 왜 이리 가벼울까' 하는 서글픈 마음 말이에요. 그래서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꺼냈습니다. 휴 잭맨의 처절한 눈빛이 기억에 남는 《레미제라블》을요. 사실 이 영화는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보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보려니 그 웅장한 음악을 감당할 에너지가 있을까 싶어 잠깐 망설이기도 했거든요.

이 영화를 왜 다시 보게 됐냐면요, 사실 지난주에 아주 사소한 일로 친한 친구와 다퉜거든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오해였는데, 서로 자존심을 세우느라 "미안해" 한마디를 못 하고 일주일째 찝찝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그 친구의 서운한 표정이 자꾸 천장에 그려져서 잠을 설쳤고요.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는 감정들에 지쳐갈 때쯤, 누군가를 용서하고 또 누군가에게 구원받는 이야기가 간절해졌던 것 같아요. 캔맥주 하나 따서 소파에 앉아 영화를 트는 순간, 19세기 프랑스의 그 거친 바닷바람 소리가 거실까지 밀려들어 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19년의 노역과 내 마음속의 낡은 번호표

영화 도입부에서 장 발장이 거대한 배를 끌며 'Look Down'을 부르는 장면을 보는데, 이상하게 작년 겨울 회사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제가 정말 큰 실수를 하나 해서 상사에게 엄청나게 깨졌거든요. 그 뒤로 한동안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조차 지옥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제 실수만 보고 있는 것 같고, 스스로 제 가슴팍에 '무능력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기분이었죠. 장 발장이 가석방 증서를 들고 세상을 향해 분노를 쏟아낼 때, 저 역시 그 억울함과 수치심이 남 일 같지 않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나도 그냥 평범하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인데, 왜 세상은 나를 실패자로만 기억할까" 하는 그 처절한 외침이 제 방 벽을 울리더라고요.

특히 미리엘 주교가 장 발장에게 은촛대를 건네며 그를 '형제'라고 불러주는 장면에서는 맥주 캔을 든 손이 살짝 떨렸습니다.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참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경이로운 용서인 것 같아요. 나라면 과연 내 물건을 훔쳐 간 사람에게 더 귀한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절대 못 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 주교의 자비가 장 발장이라는 한 인간의 영혼을 통째로 바꿔놓는 걸 보면서, 제가 일주일째 붙들고 있던 친구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각자의 '빵 한 조각' 때문에 마음의 감옥에 갇히곤 하잖아요. 그 낡은 번호표를 떼어내는 건 결국 타인의 비난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건 없는 따뜻한 손길이라는 걸 영화는 노래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팡틴의 꿈과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소중한 것들

앤 해서웨이가 삭발을 한 채로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장면은 사실 줄거리가 잘 기억 안 날 정도로 그 절망적인 표정에 압도되어 버렸습니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릴 적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들어오시던 뒷모습이 생각나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팡틴이 딸 코제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치우는 과정은, 단순히 시대적인 비극이라기보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잃어가는' 모든 부모의 얼굴처럼 보였거든요. 지난주 친구와 다툰 것도 결국은 제 알량한 자존심 하나 지키려다 소중한 관계를 망치고 있었던 건데, 팡틴의 처절함을 보니 제 고민이 참 사치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꿈꿨던 미래와 너무나 다른 현실 앞에서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야"라고 외치고 싶었던 적 있으신가요? 팡틴이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이제는 꿈조차 부끄러워진" 순간들 말이에요. 영화 속 파리의 청년들이 바리케이드를 세우며 자유를 노래할 때, 그들의 뜨거운 열망 뒤에 숨겨진 두려움을 보며 저 역시 제가 외면해왔던 용기들을 떠올렸습니다. 결국 자베르 경감이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강물로 뛰어들 때, 저는 그가 틀린 게 아니라 너무나 '완벽하고 싶었던 인간'이었기에 그 비극이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자베르처럼 완벽한 정의를 휘두르며 살 순 없지만, 적어도 장 발장처럼 하수도를 기어서라도 소중한 사람을 구해내는 끈기만큼은 잃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라이브 레코딩의 생동감과 빅토르 위고가 남긴 실제의 흔적

이 영화가 다른 뮤지컬 영화들과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배우들이 촬영 현장에서 직접 노래를 부른 '라이브 레코딩' 방식 때문일 겁니다. 보통은 스튜디오에서 완벽하게 녹음된 소리를 쓰기 마련인데, 톰 후퍼 감독은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와 울먹임을 그대로 담아냈죠. 그래서 관객인 우리는 세련된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의 '고백'을 듣게 되는 셈입니다. 앤 해서웨이가 그 긴 독창 장면을 한 번에 찍어내기 위해 수십 번을 반복하며 실제로 눈물을 쏟았다는 일화는, 이 영화가 왜 그토록 우리 마음을 파고드는지 설명해 줍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원작자 빅토르 위고가 이 소설을 쓸 때 실제 인물인 '외젠 프랑수아 비독'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비독은 실제로 전과자였으나 나중에 범죄 수사 전문가가 되어 현대 경찰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죠. 위고는 비독의 삶에서 장 발장의 구원과 자베르의 집요함을 동시에 발견해냈습니다. 또한 영화 속 혁명의 배경인 1832년 파리 6월 봉기는 실존했던 역사적 사건으로, 당시 콜레라 창궐과 경제 위기로 고통받던 하층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라는 넘버가 그토록 웅장하게 들리는 건, 그것이 단순히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던 실제 인간들의 피 끓는 외침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 세탁기 종료 벨 소리가 울리네요. 젖은 빨래들을 하나하나 털어 널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곱씹어 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 발장의 곁으로 먼저 떠난 팡틴과 주교가 찾아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라고 노래하는 장면 말이죠. 거창한 구원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저는 이제 핸드폰을 들어 일주일째 연락을 피했던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보려고 합니다. "비 오는데 잘 지내? 우리 맥주나 한잔하자"라고요. 어쩌면 그게 제 삶에서 내어주는 작은 '은촛대'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여러분의 내일도 차가운 비가 아니라, 누군가가 밝혀둔 따뜻한 촛불 같은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자, 이제 축축한 빨래를 널러 가야겠어요. 인생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그래도 내일은 또 다른 해가 뜰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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