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를 보고 난 뒤, 낯선 숲을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에 남은 색들, 한 사람이 오래 품어 온 상상력

영화 아바타1 포스터 이미지

푸른 행성에서 돌아오지 못한 마음, 영화 아바타를 보고 난 뒤

이 영화를 왜 보게 됐냐면요, 사실 아주 거창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저께 퇴근길에 지하철 역 앞 트럭에서 파는 전기구이 통닭 냄새에 홀려 한 마리를 사 들고 들어온 날이었거든요. 혼자 살다 보면 가끔 집 안의 정적이 너무 무거울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닭다리 하나를 뜯으면서 적막을 깨려고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켰는데, 마침 <아바타>가 방영되고 있더라고요.

사실 이 영화, 예전에 극장에서 3D 안경을 쓰고 봤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주변 사람들이 "안 보면 유행에 뒤처진다"라고 떠밀어서 갔던 건데, 솔직히 말하면 그때 제 머릿속엔 '와, 기술 진짜 좋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어요.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었는데, 밤공기가 선선하게 들어오면서 커튼이 느릿하게 일렁이더라고요. 방 안은 어둡고 TV 화면의 푸르스름한 빛만 가득한 그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화면 속 판도라 행성의 풍경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제 기분은 조금 몽글몽글하면서도 묘하게 차분했습니다. 평소보다 일이 일찍 끝나서 여유가 생긴 탓도 있겠지만, 영화 속 제이크 설리가 처음 자신의 '아바타' 몸으로 숲을 뛰어다니는 장면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더라고요.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흙의 감촉에 감격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 종일 딱딱한 구두 속에서 고생한 제 발이 떠올라서 그랬나 봐요.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때쯤엔 통닭은 뒷전이고, 낯선 행성의 그 찬란한 풍경에 완전히 마음을 뺏겨버렸습니다.

낯선 숲을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들

저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남들이 주인공들의 로맨스나 화려한 액션에 집중할 때, 저는 화면의 색감이나 질감에 먼저 눈이 가더라고요. 판도라의 숲은 제게 영화적 배경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낮에는 깊은 바닷속 같은 청록색과 싱그러운 연두색이 섞여 있다가, 밤이 되면 모든 식물이 형광빛으로 깨어나는 그 시각적 충격은 정말 대단했거든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잠깐 영화의 줄거리를 잊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저런 보라색과 에메랄드색의 조합을 어떻게 상상했을까?" 하는 경외심 같은 거였죠.

사실 제가 그림 수업을 듣던 시절이 생각나서 조금 씁쓸하기도 했어요. 한 번은 교수님이 "네가 가보고 싶은, 이 세상에 없는 낙원을 그려오라"는 과제를 내주신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저는 일주일 내내 캔버스 앞에 앉아 있었지만, 결국 현실에 있는 제주도 바다에 색깔만 좀 바꾼 아주 뻔한 그림을 그려갔습니다. 창의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었죠. 그런데 <아바타> 속 판도라는 달랐어요. 나무 하나, 풀잎 하나하나가 마치 수억 년의 진화 과정을 거쳐 온 것처럼 정교한 규칙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이 영화를 보면서 작년 여름 우리 집 거실 천장에서 물이 샜던 기억이 났습니다. 윗집 배관 문제였는데, 천장에 번지는 그 얼룩덜룩한 곰팡이 무늬를 보며 절망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속 홈트리(Home Tree)가 파괴되는 장면을 보니, 제 작은 거실 천장이 무너진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상실감이 느껴졌어요. 자연과 교감한다는 것, '나비족'들이 말하는 "I see you"라는 인사가 단순히 "너를 본다"는 뜻이 아니라 "너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의미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그토록 담고 싶어 했던 '생명력'이 바로 저런 것이었을까 싶어 한참을 몰입해서 봤습니다.

아, 사실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인간들이 왜 굳이 그 아름다운 숲을 다 밀어버리면서까지 광물을 캐려고 혈안이 됐는지 말이에요. 조금만 더 소통했다면 공존할 방법이 있었을 텐데, 영화 속 '쿼리치 대령'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볼 때면 괜히 예전에 저와 말이 통하지 않아 싸웠던 직장 상사가 떠올라 화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참 무섭더라고요.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에 남은 색들

영화를 다 보고 TV를 껐을 때, 방 안에는 짙은 어둠만 남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침대에 누웠을 텐데, 그날은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겠더라고요. 머릿속에는 여전히 판도라의 잔상이 가득했어요. 밤의 숲에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은은한 파란빛으로 물들던 장면, 그리고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이크란'을 타고 붉은 노을이 지는 하늘을 가르던 그 강렬한 주황색... 그 색들이 마치 제 망막에 인화된 것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현실 세계가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텔레비전을 끄고 바라본 제 방은 너무 무채색이었고, 창밖의 가로등 불빛은 판도라의 생명광(Bioluminescence)에 비하면 너무나 인위적이고 차갑게 느껴졌어요. 마치 아주 화려하고 긴 꿈을 꾸다가 갑자기 깨어난 아이처럼, 저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림을 전공했던 제게 아바타는 영화라기보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던 거대한 우주를 통째로 옮겨놓은 '살아있는 캔버스'였던 것 같아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칠하다 보면, 가끔 "이 색은 너무 튀지 않을까?" 하는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판도라라는 행성 전체에 보라색, 형광 초록색, 핫핑크 같은 과감한 색들을 쏟아부으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더라고요. 그건 단순히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세계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의 삶에도 그런 나만의 '색'이 있나요?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가장 자연스럽고 빛나는 그런 색 말이에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 무채색 같은 일상에도 조금은 과감한 색을 덧칠해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한 사람이 오래 품어 온 상상력

이 푸른 행성의 이야기가 사실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970년대 후반부터 가슴 속에 품어왔던 꿈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이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자신이 머릿속에 그린 판도라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는 기술이 자신의 상상력을 따라잡을 때까지 무려 15년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담긴 세계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집념이었던 거죠.

실제로 나비족의 언어는 언어학자를 고용해서 실제로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되었고, 판도라의 식물들은 식물학자들의 자문을 거쳐 광합성 원리까지 고려해 디자인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팩트들을 알고 나니 영화가 왜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졌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건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그 가짜에 부여된 '정교한 논리'와 '오랜 애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사실 줄거리가 잘 기억 안 날 정도로 영상에 취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상미의 바탕에 깔린 감독의 기다림과 열정은 분명하게 느껴졌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릴 수 있는 그 뚝심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더라고요. 저는 조금만 결과가 늦게 나와도 금방 포기하고 싶어지는데 말이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밤이라 길가는 조용했고, 가로수들은 가로등 빛을 받아 검푸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어요. 물론 현실의 나무들이 판도라의 식물들처럼 반짝거리며 저에게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어요. 저 잎사귀들도 어쩌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죠.

가끔은 그런 영화가 필요합니다. 뻔한 교훈이나 복잡한 반전 대신, 그저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굳어있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영화요. 저에게는 아바타가 그랬습니다. 푸른 숲의 잔상을 간직한 채로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제 세상도 조금은 더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 있기를 바랐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너무 무채색의 시간만 보내지는 않으셨나요? 혹시 삶이 지루하고 건조하게 느껴진다면, 다시 한번 판도라의 숲으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비록 돌아오는 길엔 조금 쓸쓸할지 몰라도, 세상을 보는 여러분의 눈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넓어져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이제 침대에 누워 판도라의 밤하늘을 나는 꿈을 꿔보려고 합니다. 꿈속에서라도 그 찬란한 보랏빛 숲을 다시 한 번 걷고 싶네요. 혹시 여러분이 꿈꾸는 '나만의 판도라'는 어떤 모습인가요?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 멋진 세계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