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카르페 디엠, 책상 위에 선다는 것의 의미, samuel pickering에서 시작된 불꽃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 포스터 이미지


사실 오늘 오후에 대학교 도서관 구석진 자리에서 밀린 과제를 하다가 잠깐 고개를 들었거든요.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오후 4시의 늘어진 햇살이 책상 위에 놓인 제 낡은 필통을 비추는데, 그 순간의 먼지 입자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더라고요. '아, 이 공기,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는데' 싶던 찰나에 머릿속을 스치고 간 게 바로 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였습니다.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어제 퇴근길에 만원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둘이 창밖을 보며 "아, 진짜 공부하기 싫다.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라고 툭 내뱉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 아이들의 지친 목소리가 제 고등학교 시절의 무거웠던 책가방 무게를 다시 상기시키더라고요. 집에 돌아와서도 그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책장 깊숙이 꽂아두었던 DVD를 꺼냈습니다.

저는 지금 퀀트 트레이딩 회사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하루 종일 숫자의 등락을 시각화하고 냉정한 그래프를 만지다 보면, 가끔은 제가 만들고 있는 이 정교한 시스템들이 사람의 진짜 온기를 얼마나 가리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속 웰튼 아카데미의 아이들이 마주했던 '전통, 명예, 규율, 최고'라는 가치들이 제가 매일 다루는 '데이터와 효율'이라는 단어와 묘하게 겹쳐 보여 마음이 조금 저릿했습니다.

"카르페 디엠", 낡은 교과서를 찢던 그 용기가 내게도 있었다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이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속삭일 때, 저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 장면은 제가 고등학생 때 처음 봤을 때보다, 직장인이 된 지금 더 아프게 다가오더라고요. 키팅은 아이들에게 시의 가치를 수치로 환산하는 교과서의 도입부를 찢어버리라고 말하죠.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참 이해가 안 가면서도 경이로워요. 어떻게 그 시대에 그런 파격적인 교육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줄거리가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로빈 윌리엄스의 그 깊은 눈빛에 취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는 대학교 2학년 때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경영학 전공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타이포그래피와 색채학 생각뿐이었거든요. 전공 서적 사이에 몰래 디자인 잡지를 끼워두고 보던 그 아슬아슬한 떨림이 영화 속 닐 페리(로버트 션 레너드)가 몰래 연극 대본을 읽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그때 저는 키팅 선생님 같은 존재가 간절했어요.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니?"라고 물어봐 줄 단 한 사람 말이죠.

결국 닐은 자신의 열망을 지키기 위해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만, 저는 닐의 죽음을 단순한 실패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적어도 인생의 단 한 순간만큼은 자신이 누구인지 온전하게 마주했으니까요. 제가 작년 여름, 회사 옥상에서 노을을 보다가 문득 '이 숫자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 무작정 휴가를 내고 바다로 떠났던 그 무모했던 하루가 떠오릅니다. 그날 제가 본 바다의 색깔은 제가 그리던 어떤 그래픽 차트보다도 선명했습니다. 우리는 가끔 인생의 교과서를 찢어버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게 아주 사소한 일탈일지라도 말이죠.

"오 캡틴, 나의 캡틴", 책상 위에 선다는 것의 의미

영화의 마지막, 쫓겨나는 키팅 선생님을 향해 토드 안더슨(에단 호크)이 책상 위로 올라가 "O Captain! My Captain!"을 외치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항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소심하고 말수 적던 토드가 가장 먼저 책상 위로 올라갔을 때, 저는 주먹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이 지점은 제가 몇 번을 다시 돌려봐도 늘 새로운 감정이 들더라고요. 누군가를 깊이 존경한다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의 틀을 깨는 과정이 된다는 게, 참 아프면서도 피할 수 없는 진실 같거든요.]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누군가의 아주 작은 지지 덕분에 내 세상이 통째로 흔들려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신입 디자이너 시절, 제 말도 안 되는 시안을 보고 "이건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담겨 있어서 좋아"라고 말해주셨던 첫 팀장님이 생각납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단 한 명의 '캡틴'이 보여준 신뢰가 저를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했거든요.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어두워졌을 때, 저는 한동안 불도 켜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웰튼 아카데미의 아이들은 키팅 선생님이 떠난 뒤에도 예전과 똑같은 수업을 듣고 똑같은 시험을 쳐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전과 같지 않았겠죠. 책상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각도가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으니까요.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이 너무 규격화된 차트처럼 느껴진다면, 한 번쯤은 책상 위로 올라가 보는 게 어떨까요? 거창한 사직서를 던지는 게 아니더라도, 평소와는 다른 길로 퇴근해 본다거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시집 한 권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는 그 사소한 '시적인 순간'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니까요. 여러분의 '캡틴'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혹은, 여러분이 누군가의 '캡틴'이 되어주고 있지는 않나요?

samuel pickering에서 시작된 불꽃, 실제 팩트가 전하는 위로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단순한 픽션이 아닙니다. 작가 톰 슐먼이 내슈빌의 몽고메리 벨 아카데미(Montgomery Bell Academy)에서 직접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거든요. 특히 존 키팅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 '사무엘 피커링(Samuel Pickering)' 교수는 실제로 수업 시간에 책상 위에 올라가거나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 강의를 하는 등 파격적인 교수법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실제 피커링 교수는 영화 속 키팅처럼 비극적으로 학교를 떠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학생들에게 심어준 '자유로운 사유'의 씨앗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초기 시나리오에서는 키팅 선생님이 림프종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설정이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피터 위어 감독은 그 설정을 과감히 삭제했습니다. 관객의 시선이 '선생님의 병색'이 아니라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온전히 집중되길 원했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로빈 윌리엄스는 이 영화를 통해 코미디 배우라는 이미지를 벗고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전 세계의 수많은 팬과 심지어 실제 선생님들이 SNS에 책상 위에 올라간 사진을 올리며 "O Captain! My Captain!"이라고 추모했던 일화는 이 영화가 지닌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195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Carpe Diem)?"

영화관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처럼, 이제 저도 일기장을 덮고 내일의 숫자를 다루러 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가방 속에 시집 한 권은 꼭 넣어두려고요. 숫자가 알려주지 못하는 삶의 진실이 그 얇은 종이들 사이에 숨어있을 테니까요.

오늘 밤, 여러분도 잠들기 전에 아주 짧은 시 한 구절만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당신의 마음을 툭 건드리는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웰튼 아카데미의 동굴 속에서 아이들이 속삭였던 것처럼, 우리만의 '죽은 시인의 사회'는 여전히 우리 마음속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내일 아침 출근길에는 광역 버스 안에서 휴대폰만 보지 말고, 창밖의 풍경을 조금 더 다정한 눈으로 바라봐야겠습니다. 각자의 '캡틴'을 기다리며 묵묵히 하루를 견뎌내는 우리 모두에게, 오늘은 수치가 아닌 시가 가득한 하루가 되길 빌어보면서요. 여러분, 부디 오늘 하루를 마음껏 '포착'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