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닝된 자동차보다 더 뜨거웠던 우리들의 서툰 관계들, 분노의 질주1
회사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인간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서 어디론가 확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더라고요. 그러다 주말 아침,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문득 예전에 봤던 영화 한 편이 스쳤어요. 바로 <분노의 질주> 1편이었죠. 요즘 나오는 시리즈들은 스케일도 어마어마하고 우주까지 날아간다지만, 저는 이상하게 2001년에 나온 이 투박한 첫 번째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세탁기가 덜컹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영화를 틀었는데, 첫 장면부터 느껴지는 그 특유의 기름 냄새와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가 제 방안까지 전달되는 기분이었어요. "아, 저런 때가 있었지" 싶으면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사실 어제 퇴근길에 기름값이 올랐다는 뉴스를 보며 한숨을 쉬었던 터라, 영화 속 주인공들이 기름을 아끼지 않고 바닥에 뿌려대며 달리는 모습이 조금 부럽기도 했고요.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딱 오늘까지인 요거트 하나를 꺼내 먹으면서, 저는 그렇게 20여 년 전 로스앤젤레스의 뜨거운 도로 위로 소환됐습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니까 제 기분도 좀 묘해졌습니다. 그때는 저 차들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어 보였고, 나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런 '10초짜리 차'를 한 대 가질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물론 지금 제 현실은 출퇴근길 지하철 2호선에 몸을 싣는 신세지만요. 그래도 영화 속 브라이언이 닛산 스카이라인이나 미쓰비시 이클립스의 가속 페달을 밟을 때 들리는 그 카랑카랑한 엔진 소리를 들으니, 꽉 막혔던 제 속이 조금은 뚫리는 것 같더라고요. 삶이 너무 느리고 정체되어 있다고 느껴질 때, 가끔은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빠른 영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튜닝된 자동차보다 더 뜨거웠던 우리들의 서툰 관계들
영화에서 도미닉 토레토가 자기 집 뒷마당에서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저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괜히 코끝이 찡해져요. 작년 추석 때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났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우리는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옛날이야기를 했는데, 영화 속 인물들처럼 뭔가 거창한 의리나 대단한 계획은 없었지만 그냥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거든요. 도미닉이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여기 있는 가족들이다"라고 말할 때, 그게 단순히 혈연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눈 사람들을 뜻한다는 게 참 와닿았어요. 사실 요즘은 다들 바빠서 밥 한 끼 같이 먹기도 힘들잖아요.
그런데 영화 속 브라이언을 보면 좀 안쓰럽기도 해요. 잠입 수사관이라는 신분 때문에 친구들을 속여야 하고, 사랑하는 미아에게조차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그 찝찝함... 저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친구한테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가 그게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결국 관계가 서먹해졌던 일이 있었는데, 영화 속 브라이언의 눈빛을 보니 그때의 제 마음이 떠올라서 마음이 좀 무거웠습니다. 특히 도미닉과 Johnny Tran 사이에서 갈등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모습은, 사회생활을 하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그리고 영화 중반에 나오는 '레이스 워즈(Race Wars)' 장면 말이에요. 거기서 제시가 자기 아빠의 소중한 제타를 걸고 경주를 하다가 패배하고 도망치잖아요. 그걸 보면서 제가 대학 시절에 무모하게 주식 투자를 했다가 용돈을 몽땅 날렸던 뼈아픈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 저도 제시처럼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거든요. 영화는 화려한 레이싱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채우려 애쓰는 서툰 청춘들의 모습이 보여서 더 정이 가요. 완벽하지 않아서 더 인간적인 모습들 말이죠. 사실 줄거리가 세세하게 다 기억나진 않지만, 그 특유의 땀 냄새 섞인 우정만큼은 뇌리에 박혀서 떠나질 않네요.
마지막 교차로의 선택, 여러분은 어떤 결승선을 꿈꾸시나요?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 기찻길 경주죠. 도미닉의 1970년형 닷지 차저와 브라이언의 수프라가 나란히 달리는 그 장면... 솔직히 지금 보면 CG 티가 좀 나기도 하고 "말도 안 돼" 싶은 연출도 있지만, 그 순간의 긴장감만큼은 진심이더라고요. 열차가 지나가기 직전, 깻잎 한 장 차이로 선로를 통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운명의 갈림길에 선 우리네 인생 같기도 했어요. 여러분도 혹시 살면서 "지금 이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몰라"라고 느꼈던 아찔한 순간이 있으셨나요? 저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의 일을 시작할 때 딱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경주가 끝나고 도미닉의 차가 전복됐을 때, 브라이언이 경찰차가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도미닉에게 수프라 차 키를 건네주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습니다. "나는 너에게 10초짜리 차를 빚졌다"며 법보다 우정을 선택하는 그 모습. 사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그런 판타지 때문이잖아요. 삭막한 현실에서는 계산기부터 두드리게 되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는 이 시간만큼은 뜨거운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싶어지는 거죠.
글을 쓰다 보니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네요. 영화 속 도미닉이 멕시코의 해변 도로를 질주하며 끝나는 쿠키 영상처럼, 우리 인생도 가끔은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자유롭게 달릴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의 마음속 엔진은 지금 어떤 소리를 내고 있나요? 혹시 과부하가 걸려 연기가 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너무 오래 멈춰있어서 녹슬어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아까 돌려둔 빨래를 널러 가야겠어요. 왠지 오늘은 평소보다 빨래 너는 손길이 조금 더 가벼울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잡지 기사 한 줄에서 시작된 거대 프랜차이즈의 탄생 비화
이 메가 히트작의 시작이 사실은 아주 작은 잡지 기사였다는 걸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거예요. 1998년
재미있는 점은 주연 배우들의 캐스팅 비화예요. 원래 도미닉 역으로 제작사가 가장 원했던 배우는 티모시 올리펀트였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는 이 영화가 "멍청할 것 같다"며 거절했고, 덕분에 무명에 가까웠던 빈 디젤이 이 운명적인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또한, 미아 역을 맡은 조다나 브루스터와 레티 역의 미셸 로드리게스는 촬영 당시 운전면허조차 없어서 영화를 위해 급하게 운전 교육을 받아야 했다는 귀여운 사실도 있죠. 이런 디테일들을 알고 보면 영화 속 그녀들의 운전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몰라요.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신기하네요. 면허도 없는 배우들이 그런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니 말이죠.
영화 제작비가 당시 3,800만 달러 수준이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으니,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투자 중 하나로 꼽힐 법하죠. 무엇보다 대역을 최소화하고 실제 자동차 78대를 부수어가며 만든 아날로그 액션의 힘이, 훗날 10편이 넘는 시리즈를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 됐습니다. 단순히 빠른 차들의 잔치가 아니라, 길거리 하위문화를 주류로 끌어올린 문화적 현상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이제 진짜 노트북을 덮어야겠네요. 글을 쓰다 보니 왠지 모르게 손가락 끝에 기름때가 묻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해 버렸습니다. 영화 속 브라이언이 결국 경찰 배지를 던져버렸던 것처럼, 저도 오늘 남은 시간만큼은 '직장인 누구'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으로 푹 쉬어보려고 합니다. 사실 뭐, 대단한 계획은 없어요. 아까 먹다 남은 나쵸나 마저 먹으며 다음 시리즈를 정주행할까 고민 중이거든요.
여러분도 오늘 하루는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마시고, 잠시 기어를 중립에 놓고 숨을 골라보시는 건 어떨까요? 속도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는 거니까요. 그럼 저는 이만 빨래 너는 소리에 맞춰 8기통 엔진 소리를 흉내 내며 거실로 나가보겠습니다. 다들 멋진 주말 보내세요. 브룸 브룸!
제 글이 여러분의 무료한 주말에 작은 활력소가 되었다면 좋겠네요. 혹시 이 영화 시리즈 중에서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편은 무엇인가요? 아니면 영화처럼 잊지 못할 '나만의 10초'가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다음에 또 사람 냄새 나는 영화 이야기로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