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너머로 떠난 아빠를 기다리며, 영화 인터스텔라가 남긴 온기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이미지


별 너머로 떠난 아빠를 기다리며, 영화 인터스텔라가 남긴 온기

이 영화를 왜 보게 됐냐면요, 사실 아주 거창한 과학적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어요. 어제 퇴근길에 유난히 몸이 무겁더라고요. 편의점에 들러 평소엔 잘 마시지도 않는 캔맥주 두 개랑 낱개로 파는 감자칩 하나를 사 들고 들어왔죠. 씻고 나오니 집안이 너무 조용해서, 그 적막이 싫어 TV를 켰는데 마침 <인터스텔라>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본 영화인데도, 그 특유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리니까 나도 모르게 맥주 캔을 따면서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게 되더라고요.

사실 저는 문과 출신이라 상대성 이론이니 양자 역학이니 하는 말들을 들으면 머리부터 지끈거리는 사람입니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친구들이 "이건 꼭 아이맥스로 봐야 해!"라고 난리를 칠 때도, 저는 그저 화면이 크니까 볼만하겠거니 싶었거든요. 그런데 혼자 조용히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다시 본 이 영화는, 우주 탐험기가 아니라 지독하게 슬픈 가족 영화처럼 다가왔습니다. 창밖에는 늦은 밤 차 지나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고, 방 안은 TV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으로 가득 찼는데, 그 분위기 때문인지 영화 초반 쿠퍼가 딸 머피를 두고 떠나는 장면에서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어제 제 기분은 조금 외로웠던 것 같아요. 회사에서 프로젝트 때문에 상사한테 한 소리 듣고 온 날이라 그런지, 광활한 우주에 던져진 쿠퍼의 처지가 꼭 제 처지 같기도 했고요.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라는 그 유명한 대사가 평소엔 희망차게 들렸는데, 어제는 왠지 "어떻게든 버텨야 해"라는 절박한 위로처럼 들렸거든요. 영화 속 먼지 바람이 거실까지 불어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해서 보다 보니, 어느새 맥주 한 캔을 다 비우고 두 번째 캔을 따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파도보다 무서웠던 건 흘러가 버린 시간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많은 분이 블랙홀이나 도킹 장면을 말하시겠지만, 저는 밀러 행성에서 돌아온 쿠퍼가 23년 동안 쌓인 영상 메시지를 확인하며 오열하는 장면이 가장 가슴 아프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문득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그 죄책감, 그리고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통화 내용조차 희미해진 지금의 제 모습이 겹쳐 보였거든요. 쿠퍼에게는 겨우 몇 시간이었지만, 지구에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청춘이 다 지나가 버린 긴 세월이었다는 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취업 준비를 한답시고 고시원에 틀어박혀 지냈던 2년이라는 시간 말이죠. 고시원 좁은 방 안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보낸 시간은 제게는 멈춰버린 것 같았는데, 명절에 내려가서 본 부모님의 얼굴은 몰라보게 늙어 있으시더라고요. 그때 느꼈던 그 이질적인 시간의 속도감이 영화 속 '시간 지연' 현상과 너무 닮아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는 우주만큼 멀지 않았지만, 마음의 거리는 이미 광년 단위로 멀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 혼자 씁쓸해졌거든요.

아, 이 부분은 제가 과학적으로 맞게 이해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중력이 강하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를 수 있는지...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가슴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공포였어요. 만약 저라면 그 밀러 행성에서 파도를 피하며 "빨리 돌아가야 해"라고 울부짖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했을 것 같아요. 영화 속 아멜리아 브랜드 박사가 사랑을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이라고 말할 때, 처음엔 "과학자가 저런 소리를 해도 되나?" 싶었지만, 나중에 쿠퍼가 5차원 공간에서 딸의 시계 초침을 움직이는 걸 보며 결국 수긍하게 되더라고요. 논리로는 설명 안 되는 것들이 세상엔 참 많으니까요.

영화가 끝난 뒤 거실을 채운 적막과 여운

169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이 지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는 한동안 TV를 끄지 못했습니다.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이 잦아들고 나서야 겨우 리모컨을 눌렀는데, 꺼진 화면에 비친 제 얼굴이 꽤나 엉망이더라고요. 캔맥주는 이미 미지근해져 있었고, 안주로 먹던 감자칩 봉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영화를 보기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기분이었어요. 아마도 영화 속에서 쿠퍼가 결국 딸과 재회하고, 또 다른 희망을 찾아 떠나는 모습에서 제 나름의 정답을 찾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영화 한 편 때문에 밤잠을 설친 적이 있으신가요?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간절한 존재일까?" 혹은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소중한 시간은 없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라고요. 저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부모님 카톡 방에 "자요?"라고 짧게 남겼습니다. 답장은 없었지만, 그 메세지를 보낸 것만으로도 제가 우주 미아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라, 우리를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나침반 같은 영화인 것 같아요.

사실 줄거리가 나중에는 좀 복잡해져서 테서랙트 안에서 쿠퍼가 정확히 뭘 한 건지 완벽히 설명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가 딸의 방 책장 너머에서 "가지 마(STAY)"라고 절규하던 그 마음만큼은 굳이 물리학자가 아니어도 다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건 지식이 아니라 본능이니까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밤하늘의 별이 예전처럼 멀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저 별 중 어딘가에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후회하고, 또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되거든요.

킵 손의 집념이 만든 블랙홀 '가르강튀아'의 진실

이 영화가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킵 손(Kip Thorne) 교수의 공이 정말 컸죠. 놀란 감독은 "진짜 같은 우주"를 보여주고 싶어 했고, 킵 손은 자신의 이론이 영화적 허용이라는 핑계로 왜곡되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블랙홀 '가르강튀아'의 모습을 구현할 때, 실제 물리학 방정식을 슈퍼컴퓨터에 입력해서 렌즈 레이 트레이싱 기법으로 하나하나 계산해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가 영화에서 본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빛의 고리입니다. 사실 이전까지의 영화들에서 블랙홀은 그저 검은 구멍으로만 묘사되곤 했거든요. 하지만 인터스텔라가 보여준 블랙홀은 주변의 빛을 왜곡시켜 앞면과 뒷면이 동시에 보이는, 기묘하면서도 황홀한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운 건 영화가 개봉한 지 몇 년 뒤, 인류가 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을 때 그 모습이 영화 속 가르강튀아와 거의 흡사했다는 점이에요. 과학적 상상력이 실제 사실을 미리 예견한 셈이죠.

여담으로, 놀란 감독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옥수수밭 장면도 CG를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캐나다 캘거리에 직접 엄청난 크기의 땅을 사서 1년 동안 옥수수를 길렀대요. 영화 촬영이 끝나고 그 옥수수를 팔아서 수익까지 냈다고 하니 참 대단한 고집이죠? 이런 지독한 고집들이 모여서 인터스텔라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웜홀이나 5차원 공간에 대한 묘사 역시 단순히 예쁘게 그린 게 아니라, 현대 물리학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영화가 한층 더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방 안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도 천장에 별빛이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각자의 블랙홀 속을 헤매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때로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무섭고, 때로는 거대한 파도 같은 시련에 압도당하기도 하죠. 하지만 영화가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에겐 그 모든 시공간을 가로질러 우리를 지탱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해 보이네요. 비록 내일 아침이면 다시 팍팍한 현실로 돌아가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하겠지만, 제 마음속엔 쿠퍼가 딸에게 남겼던 그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브랜드 박사의 대사를 다시 한번 곱씹으며, 이제 진짜 잠자리에 들어야겠네요.

혹시 여러분의 책장 너머에서도, 누군가 간절한 신호를 보내고 있지는 않나요? 내일은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에게 짧은 안부 인사라도 건네보세요. 그게 바로 우리가 이 거대한 우주에서 길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