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온 그 냄새, 우리 삶의 서글픈 수직 구조

영화 기생충 포스터 이미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온 그 냄새, 우리 삶의 서글픈 수직 구조

오늘 아침에는 유독 몸이 무거웠습니다. 주말 내내 밀린 빨래를 한바탕 돌려놓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거든요. 세탁기가 돌아가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창밖에는 또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비가 오면 공기가 눅눅해지면서 집안 구석구석에서 특유의 냄새가 올라오곤 하잖아요. 어제 퇴근길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가 냉장고에 한 캔 남아 있길래, 이른 낮부터 그걸 하나 땄습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문득 5년 전 극장에서 숨을 죽이며 봤던 영화 <기생충>이 머릿속을 스치더라고요.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그 찜찜한 기분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탔네 하는 화려한 소식들이 들려오기 전부터, 저는 이 영화가 제 삶의 밑바닥 어딘가를 건드릴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거든요. 왜 보게 됐냐고 물으신다면, 아마도 그 '계급'이라는 불편한 단어를 봉준호 감독이 어떻게 요리했을지 궁금해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본 <기생충>은 단순한 사회 고발 영화가 아니더라고요. 그건 제 코끝을 맴도는,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우리네 삶의 냄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반지하의 창문 너머로 보이던 취객의 다리와 나의 자존감

영화 초반부, 기택(송강호)의 가족들이 반지하 방에서 와이파이 신호를 잡으려고 변기 근처를 서성이는 장면은 정말이지 웃픈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마냥 웃을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제가 대학생 때 살던 첫 자취방이 딱 그랬거든요. 보증금 몇 백에 월세 20만 원짜리 반지하. 창문을 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과 종아리가 바로 보이고, 가끔 술 취한 아저씨들이 창가 근처에서 실례를 하려고 하면 소리를 버럭 질러야 했던 그 공간 말이에요.

영화 속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네 저택으로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 제 가슴 한구석도 같이 헉헉거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과외 알바를 하러 소위 말하는 '부촌'에 가본 적이 있거든요. 저희 집 앞 지하철역은 낡은 포장마차와 기름 냄새로 가득한데, 그 동네 역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던 그 묘하게 깔끔하고 정돈된 공기... 그게 참 낯설더라고요. 기우가 가짜 재학증명서를 들고 저택 대문을 통과할 때 느꼈을 그 기묘한 고양감과 두려움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습니다.

특히 폭우가 쏟아지던 밤, 박 사장네 가족에게는 캠핑을 망친 아쉬운 이벤트였던 그 비가 기택의 가족에게는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재난이 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사실 작년 여름에 제 자취방에도 천장이 살짝 샜던 적이 있거든요. 양동이를 받쳐두고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인스타그램을 켜보니 누군가는 호텔에서 비 오는 창밖을 보며 '호캉스'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참 가슴이 시립니다. 같은 하늘 아래 내리는 비인데, 누구는 낭만을 즐기고 누구는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그 지독한 불균형. 봉준호 감독은 그 수직적인 대비를 계단이라는 장치를 통해 너무나도 잔인하게 보여주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냄새'라는 이름의 낙인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역시 '냄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박 사장(이선균)이 기택에게서 풍기는 냄새를 두고 "무 자른 행주 삶을 때 나는 냄새"라고 표현하거나, 지하철 타는 사람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말할 때, 저도 모르게 제 옷소매를 코끝에 가져다 댔습니다. 그건 단순히 씻지 않아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반지하의 눅눅한 습기와 오래된 가구, 그리고 가난이라는 환경이 세포 하나하나에 박혀버린 흔적 같은 거잖아요.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그런 기분을 느낀 적 있으신가요? 분명 나는 평범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코를 살짝 찡그리는 몸짓에서 "아, 나는 저들과 다른 선 너머에 있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 말이죠. 박 사장이 악취를 견디지 못해 코를 막으며 차 키를 집어 들던 그 찰나의 순간, 기택의 눈빛이 변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분노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완전히 짓밟혔을 때 나오는 처절한 자기방어였을 거예요.

영화가 끝난 뒤, 기우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나레이션이 흐를 때 저는 소파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돈을 벌면 그 집을 사겠다"는 기우의 계획은 희망일까요, 아니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망상일까요? 사실 줄거리가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후반부의 그 참혹한 파티 장면에 취해 있었지만, 마지막 그 차가운 눈밭 위에 서 있는 기우의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무서웠습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노력하면 계단을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영화는 그 계단 끝에 놓인 문이 얼마나 견고하게 닫혀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독자 여러분은 지금 어느 계단에 서 계신가요? 그리고 여러분이 머무는 공간은 어떤 냄새를 담고 있나요? 저는 오늘 빨래 건조기 시트를 평소보다 한 장 더 넣었습니다. 이 인공적인 향기가 제 가난한 흔적을 조금이라도 덮어주길 바라면서요.

언어의 장벽보다 높은 '계급의 장벽'을 허문 디테일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배경에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봉테일'이 숨어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영감은 감독이 대학 시절 실제로 부잣집에서 수학 과외를 했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당시 그는 "내가 이 집에 기생하고 있다"는 묘한 기분을 느꼈고, 그 감각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확장한 것이죠. 특히 영화 속 저택은 실존하는 집이 아니라, 세심하게 설계된 세트장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계층의 높낮이가 극명하게 갈리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인 셈이죠.

재미있는 점은, 영화 속 '짜파구리' 같은 한국적인 소재가 해외 관객들에게는 'Ram-don(라면+우동)'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소개되면서도, 그 속에 담긴 빈부 격차의 뉘앙스는 완벽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비싼 한우 채끝살을 서민적인 인스턴트 라면에 넣어 먹는 그 모순적인 장면 하나로 박 사장 가족의 과시적인 소비를 단번에 보여준 거죠.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수석(Suseok)은 기우의 가족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희망'으로 상징되지만, 결국 기우의 머리를 내려치는 '흉기'가 됩니다. 이런 상징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보니, 영화를 볼 때마다 보지 못했던 새로운 구석들이 자꾸 발견되더라고요. 전문가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상호의존 구조나 숙주와 기생의 관계 같은 어려운 담론을 제쳐두더라도, 영화 곳곳에 배치된 이 사소한 디테일들이야말로 <기생충>을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 만든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탁기 알람이 울리네요. 다 돌아간 빨래를 꺼내는데, 따뜻한 온기와 함께 세제 냄새가 확 풍깁니다. 이 냄새가 집안 전체를 덮어주니 잠시나마 안심이 됩니다. 영화 속 기택은 지금쯤 그 어두운 지하 벙커에서 아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또 다른 기생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까요.

캔맥주 한 캔에 취기가 살짝 올라오니 세상이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냄새는 안녕한가요?"라고 물을 뿐이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저는 이제 축축한 빨래를 널러 가야겠습니다. 내일은 햇볕이 쨍하게 나서 이 눅눅한 기분까지 싹 말려줬으면 좋겠네요.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가 아니라, 갓 말린 수건의 뽀송뽀송한 향기가 가득한 그런 하루를 꿈꿔봅니다. 다들 오늘 하루,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 애쓰지 마세요.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우리 조금은 서로에게 너그러워져도 되지 않을까요? 창문을 닫고 이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