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갈라지는 순간 떠오른, 어릴 적 아버지가 깎아주신 사과의 갈변, 영화 샌 안드레아스
방 안의 공기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오후였습니다. 창문을 살짝 열어두었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산새 소리가 평소보다 날카롭게 귀를 찌르더라고요. 사실 어제 낮에 길을 걷다가 문득 발밑의 보도블록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했거든요. 그냥 지나가는 덤프트럭 때문이었겠지만, 그 짧은 순간에 '만약 지금 이 땅이 무너진다면?' 하는 공포가 훅 끼쳐왔습니다.
이 영화 '샌 안드레아스'를 다시 재생하게 된 건 아마도 그 막연한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어서였나 봐요.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고장 난 손목시계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멈춰버린 시계 바늘을 보니, 영화 속에서 모든 문명이 멈추는 그 찰나의 순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화려한 CG로 포장된 재난 영화라기보다, 저에게는 그 시계처럼 멈춰버린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땅이 갈라지는 순간 떠오른, 어릴 적 아버지가 깎아주신 사과의 갈변
영화 속에서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찢어지며 거대한 먼지 구름을 내뿜는 장면을 보는데, 뜬금없이 어릴 적 기억이 하나 떠오르더라고요.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과를 깎아주시고는 급한 전화를 받으러 나가신 적이 있어요. 혼자 남겨진 접시 위에서 사과가 점점 갈색으로 변해가는 걸 보며, 왠지 모를 무력감을 느꼈었죠. 영화 속에서 레이(드웨인 존슨)가 무너지는 건물을 뒤로하고 가족을 찾아 헤매는 그 필사적인 눈빛이, 그때 제가 느꼈던 '변해가는 사과를 막을 수 없었던 아이의 마음'과 묘하게 연결됐습니다.
재난은 순식간에 닥치지만, 그 여파는 갈변하는 사과처럼 아주 천천히 우리 삶을 갉아먹잖아요. 레이는 구조 대원이지만, 과거에 지키지 못한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마음의 단층'을 품고 사는 사람이에요. 영화 중반, 레이가 아내와 함께 침몰하는 건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단순히 딸을 구하는 행위를 넘어,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줄거리가 중간중간 흐릿해질 정도로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는 시각적 충격이 컸는데, 그 요란함 사이로 레이의 거친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제 가슴 한구석도 같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더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난주에 부모님과 크게 말다툼을 하고 전화를 한 번도 안 드렸거든요. "너는 왜 네 고집만 피우니"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데, 영화에서 지진 해일이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걸 보니 제가 세우고 있던 고집이 얼마나 하찮은지 깨달았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덮치기 직전,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은 누군가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더군요.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손에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영화 속 가족들의 재회 장면에 제 미안함을 슬쩍 얹어보았습니다.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검게 변했을 때, 저는 불 꺼진 방 안에서 가만히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습니다. 영화 속 블레이크가 아빠에게 배운 매듭법으로 위기를 넘기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아주 작은 생존의 기술들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싶더라고요. 여러분도 혹시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의 행동보다, 그 옆에서 이름 없이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의 겁에 질린 눈동자에 마음이 쓰인 적 없으신가요?
영화 '샌 안드레아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도 지키고 싶은 단 한 사람이 있느냐"라고요. 드웨인 존슨의 압도적인 체격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딸을 끌어올릴 때 터져 나온 그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진짜 영화의 주인공이었죠.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돌려봐도 그 감정의 깊이를 다 가늠하기 어렵더라고요. 완벽하지 않은 한 아버지가 보여준 그 서툰 사랑이, 오히려 지진보다 더 강렬한 진동으로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방금까지 지옥 같았던 화면 속 세상이 조용해지고 나니, 창밖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평범한 발자국 소리가 보석처럼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언제 마지막으로 잡아보셨나요? 재난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놓치는 그 순간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전해준 이 묵직한 울림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네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구조 대원이 될 수 있다"는 그 투박한 진심 말이에요.
샌 안드레아스 단층의 실제 공포와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
이 영화의 밑바탕에는 실제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라는 과학적인 공포가 깔려 있습니다. 미국 서부를 가로지르는 이 거대한 틈은 지질학계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죠. 흔히 '빅 원(The Big One)'이라 불리는 대지진에 대한 공포를 영화는 아주 영리하게 파고들었습니다. 비록 영화적 극적 재미를 위해 지진 해일이나 단층의 갈라짐을 다소 과장하긴 했지만, 그 근저에 깔린 '예고 없는 재앙'에 대한 불안만큼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지질학자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과학적으로는 오류가 많지만, 재난 대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데는 이만한 영화가 없다"고 평했다는 거예요. 저 역시 영화 속에서 무너진 건물 사이로 생존 가방을 챙기고 침착하게 이동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제 서랍 속에 굴러다니던 플래시 건전지를 한 번 더 확인하게 됐습니다. 전문적인 지식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그런 사소한 '삶에 대한 의지'가 아닐까 싶네요.
결국 영화 '샌 안드레아스'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빌려와 우리 삶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어루만집니다. 땅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우리가 공들여 쌓은 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폐허 속에서 다시 서로를 찾아내고, 진흙 묻은 손을 맞잡는 그 에너지만큼은 자연도 어쩌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죠. 저는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님께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낼 용기가 생겼습니다.
방 안 불을 켜지 않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속 먼지가 가라앉듯 제 복잡했던 마음도 조금은 차분해진 것 같네요. 이제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고장 난 시계를 다시 꺼내 봅니다. 시간은 멈춰 있어도, 제가 오늘 느낀 이 온기는 멈추지 않고 내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주말도 부디 평온하기를, 그리고 아주 사소한 사랑의 확인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며 글을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