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한 방에 쓰러뜨리던 그 단호함이, 내 삶의 불확실함과 마주했을 때, 디어 헌터

영화 디어 헌터 포스터 이미지


오늘 제 기분은 꼭 며칠 전 옷장 구석에서 발견한, 한쪽만 남은 낡은 가죽 장갑 같아요. 분명히 소중했던 물건인데 짝을 잃어버려 더 이상 쓸모는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그 가죽에 배어 있는 손때와 온기가 아까워 차마 손을 놓지 못하는 그런 상태 말이에요. 사실 제가 이 영화 '디어 헌터'를 왜 다시 보게 됐냐면요, 어제 낮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한 노인 때문이었어요. 공원 벤치에 앉아 계셨는데,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면서 계속해서 빈 주머니를 뒤적거리시더라고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지만, 정작 본인이 뭘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은 그 눈빛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그 눈빛을 본 순간, 십수 년 전 보았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마치 어제 일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들이 서로 엉켜 흐르는 소리를 배경 삼아, 불을 끄고 홀로 소파에 깊숙이 파묻혔습니다. 3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이 예전에는 버겁게 느껴졌는데,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이번에는 그 긴 일상의 묘사가 오히려 저에게는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기록처럼 느껴져서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영화가 시작되고 펜실베이니아의 제철소 열기보다 더 뜨겁게 웃고 떠드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는데, 참 이상하게도 제 가슴 한구석이 자꾸 아릿해졌습니다. "아, 저렇게 소란스럽게 행복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지" 싶은 기억들이 툭툭 튀어나왔거든요. 특히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마이크의 그 무심한 듯 따뜻한 눈빛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저와 정말 친했던 친구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군대에 가기 전날, 머리를 깎고 나타난 그 친구를 보며 애써 농담을 던졌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죠.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절대로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요.

사슴을 한 방에 쓰러뜨리던 그 단호함이, 내 삶의 불확실함과 마주했을 때

영화 속에서 마이크는 사슴을 사냥할 때 '한 방(One Shot)' 원칙을 고수합니다. 짐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아주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죠. 이걸 보는데 저는 자꾸만 제 사회 초년생 시절의 첫 번째 명함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는 저도 마이크처럼 세상 모든 일이 제 계획대로, 단 한 번의 노력으로 완벽하게 해결될 거라 믿었거든요. 내 삶의 과녁을 정확히 조준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멋진 결과가 기다릴 줄 알았던 그 오만함이, 영화 속 사슴 사냥 장면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눅눅한 정글 속에서 강요된 러시안 룰렛판에 앉게 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제가 겪었던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터널을 떠올렸습니다. 예전에 사업을 하다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고통이었고,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갈 확률이 6분의 1도 안 된다고 느껴지던 그 절망적인 순간들 말이에요. 영화 속에서 크리스토퍼 워컨(닉)이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멍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단순히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제가 느꼈던 그 막막한 생의 벼랑 끝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닉의 눈빛이 생기를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사실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잘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왜 그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을까요? 마이크는 돌아왔지만, 왜 닉은 사이공의 어두운 도박판에 남겨져야만 했을까요? 어쩌면 닉은 그 정글에서 이미 영혼의 일부를 잃어버렸고,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건 오직 그 서늘한 총구의 감촉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예전에 큰 실패를 겪고 나서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느꼈던 그 지독한 고립감이 닉의 모습에서 비쳐 보여 한참을 숨죽여 울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마이크가 친구들과 다시 사슴 사냥을 떠나지만, 차마 사슴을 쏘지 못하고 하늘로 총을 발사하는 장면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한 방"을 외치던 그가 이제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아서라기보다, 자신이 겪은 그 지독한 파괴의 기억 때문에 더 이상 누군가(혹은 무언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겠죠. 저 역시 큰 시련을 겪고 난 뒤로는 예전처럼 남을 쉽게 판단하거나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게 됐거든요. 내 안의 균열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타인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그 뼈아픈 성숙이, 영화 속 마이크의 뒷모습에 묵직하게 얹혀 있었습니다.

텅 빈 의자만 남은 식탁, 여러분도 저처럼 잃어버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나요?

영화의 후반부, 결국 닉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남겨진 친구들은 작은 바에 모여 앉습니다. 거기서 그들이 아주 조용하게 'God Bless America'를 부르잖아요. 그 노래가 애국심의 발로라기보다는, 찢어질 대로 찢어진 마음을 어떻게든 기워 붙여보려는 가련한 몸부림처럼 들려서 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 비어 있는 의자 하나를 보며 말없이 술잔을 채워본 적 있으신가요?

사실 줄거리가 이쯤 되면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법도 한데, 그들이 노래를 부를 때의 그 떨리는 어깨와 서로를 쳐다보지 못하는 시선들만은 선명하게 남습니다. "닉은 이제 없지만,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그 지독하고도 당연한 결론 앞에 선 인간들의 모습. 저는 영화를 끄고 나서도 한참 동안 거실 불을 켜지 못했습니다. 창밖의 빗소리는 여전했고, 제 방 안의 적막은 영화 속 바의 분위기와 너무나 흡사했거든요.

독자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어요. 여러분의 인생에서 '사슴'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그 사슴을 쏘지 못하고 돌아온 뒤, 여러분은 어떤 노래로 그 공허함을 채우고 계시는가요? 전쟁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중한 것을 잃고도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늘 존재한다는 것을 '디어 헌터'는 끈질기게 가르쳐줍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랫동안 서먹했던 옛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냥, 네 생각이 나더라"는 아주 짧은 안부였지만, 그 글자를 적는 손가락 끝에 닉을 찾아 헤매던 마이크의 간절함이 조금은 묻어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거든요.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잘 이해가 안 가네요. 메릴 스트리프가 연기한 린다는 왜 그토록 마이크를 기다렸을까요? 닉의 약혼녀였으면서도 마이크에게 위안을 얻으려 했던 그녀의 마음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저는 그게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폐허가 된 마음 위에도 잡초는 자라고, 슬픔 속에서도 사람은 체온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니까요.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모습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준 진정한 구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빚어낸 광기와 예술의 경계, 실제 사실과 영감

이 영화 '디어 헌터'는 1978년 개봉 당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실제 전쟁의 참혹함보다 '인간의 내면이 무너지는 과정'에 집중했죠. 특히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러시안 룰렛' 장면은 사실 베트남 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라는 지질학적, 역사적 증언이 많습니다. 하지만 치미노 감독은 전쟁의 도박성과 인간성을 시험하는 극한의 도구로서 이 장치를 고집했죠. 팩트보다 더 강한 감정적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감독의 예술적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를 덧붙이자면, 극 중 스탠리 역을 맡았던 존 커제일은 촬영 당시 이미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고 해요. 제작사는 보험 문제로 그를 하차시키려 했지만, 로버트 드니로가 자신의 출연료를 담보로 내걸며 그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고집했죠. 영화 속 친구들의 우정이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그대로 존재했던 겁니다. 존 커제일은 이 영화가 완성된 직후 세상을 떠났고, '디어 헌터'는 그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또한, 영화 초반의 그 긴 결혼식 장면은 실제 러시아 정교회 교인들을 엑스트라로 기용해 일주일 넘게 촬영하며 진짜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배우들에게 진짜 술을 마시게 하고 실제 춤을 추게 했던 감독의 집요함 덕분에, 관객들은 그들이 잃어버리게 될 일상의 가치를 그토록 절절하게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런 뒷이야기를 알고 나면,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왜 그토록 떨리고 투박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영화의 여운이 이제는 제 그림자 밑으로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네요. 빗줄기는 가늘어졌고, 세상은 다시 내일을 준비하는 고요함 속으로 들어갑니다. 영화 속 마이크가 닉의 유품을 정리하며 느꼈을 그 먹먹함이 제 방 안에도 은은하게 퍼져 있습니다. 이제 저는 노트북을 닫고, 아까 낮에 보았던 그 노인의 뒷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그분은 무엇을 잃어버렸고, 저는 또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식탁에 앉아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가사가 기억나지 않아 흥얼거림으로 끝날지라도, 그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용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디어 헌터'는 저에게 전쟁 영화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낮은 목소리의 위로였습니다.

이제 스탠드를 끄고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어제 다투고 화해하지 못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해"라는 말 대신, "오늘 날씨 좋다, 같이 걷자"라고 말해보려 합니다. 우리 삶의 조준경이 조금 빗나갔더라도, 다시 0점을 맞추고 살아갈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법이니까요. 여러분의 밤도 부디 평온하기를, 그리고 아주 사소한 연결의 감각이 여러분을 외로움으로부터 지켜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영화관 문을 나서는 사람처럼 옷깃을 여미며, 이 긴 수다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