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그 시절,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초록색 불빛'은 어디에 있을까
제 삶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저는 습관적으로 화려한 영상을 찾곤 합니다. 어제도 그랬어요. 유난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창밖에는 미세먼지 가득한 회색 하늘만 떠 있길래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캔맥주 하나를 꺼냈죠. 안주도 없이 소파에 깊숙이 파묻혀 리모컨을 돌리다가 멈춘 곳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였습니다. 사실 이 영화,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봤거든요? 그때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그 눈부신 미소와 펑펑 터지는 폭죽 소리에만 취해 있었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보니 느낌이 참 묘하더라고요.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는데, 문득 예전에 제가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 전력 질주했던 기억이 슥 지나갔습니다. 왜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안 될 걸 알면서도 끝까지 가보고 싶은 고집 같은 거요. 오늘은 그 고집스러운 남자,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를 제 식대로 좀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 시절,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초록색 불빛'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속에서 개츠비가 바다 너머 데이지의 집을 향해 손을 뻗으며 바라보던 그 가느다란 '초록색 불빛' 말이에요. 그거 보면서 제 대학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가난했고, 제가 좋아하던 사람은 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화려한 친구였죠. 그 친구의 SNS에 올라오는 일상을 보며 '나도 저 무리에 섞이고 싶다', '나도 저런 여유를 갖고 싶다'며 밤새도록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개츠비가 밀주를 팔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 이유가 결국 '데이지'라는 과거의 상징을 되찾기 위함이었다는 게, 예전에는 참 로맨틱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그게 얼마나 지독한 자기학대인지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개츠비가 사랑한 건 '데이지'라는 여자가 아니라, 그녀로 대변되는 자신의 '완성된 성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가끔 그렇잖아요. 지금 내 옆에 있는 소소한 행복보다,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화려한 무언가를 잡아야만 내 인생이 비로소 '위대해질 것' 같은 착각요. 영화 속 파티 장면은 정말 화려합니다. 제이 지(Jay-Z)의 힙합 비트가 1920년대 배경에 깔리는데, 그 이질적인 느낌이 마치 현대인의 불안함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파티가 끝나고 난 뒤의 적막함... 아, 그건 정말 경험해 본 사람만 아는 기분이죠. 친구들과 밤새 술 마시고 떠들다 집에 돌아와 혼자 불 꺼진 방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그 서늘한 공기 같은 거요. 개츠비는 매주 그 공기를 견디며 데이지를 기다렸던 거겠죠.
화려한 껍데기 뒤에 숨겨진, 차갑고도 비린 현실의 냄새
바즈 루어만 감독은 정말 시각적인 천재 같아요.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문득문득 원작 소설이 주는 그 서늘한 문장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데이지가 조금 더 가련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사실 소설 속의 그녀는 훨씬 더 잔인하고 속물적이거든요. 톰과 데이지, 이 부부를 보면서 저는 작년 명절에 우연히 만난 먼 친척들이 생각났습니다. 겉으로는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다 하지만 결국 자기들의 안락한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상처쯤은 가볍게 즈려밟고 가는 그런 사람들 말이에요.
"그들은 부주의한 사람들이다." 소설 속 닉 캐러웨이의 이 한마디가 영화 후반부에 닉의 목소리로 흘러나올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개츠비는 그 '부주의한 사람들'이 던진 쓰레기를 치우다가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죠. 제가 만약 닉이었다면 개츠비에게 말해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그만해, 그 여자는 네가 생각하는 그 천사가 아니야"라고요. 하지만 개츠비는 듣지 않았겠죠? 원래 사랑에 눈이 멀면 옆에서 아무리 바른 소리를 해도 안 들리는 법이니까요. 저도 예전에 친구가 말리는 연애를 억지로 이어가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적이 있어서 그런지, 수영장에 덩그러니 떠 있는 개츠비의 마지막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아 눈시울이 좀 붉어졌습니다. 맥주 캔이 벌써 비었더라고요.
1920년대 미국의 광기와 '잃어버린 세대'가 남긴 유산
이 영화와 소설이 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지 궁금해서 좀 찾아본 적이 있는데, 이게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그 시절, 사람들은 돈과 쾌락에 미쳐 있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본인이 직접 그 파티의 주인공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 허무함을 가장 잘 알았던 관찰자였죠. 사실 개츠비라는 인물 자체가 그 시대의 모순을 다 담고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지만, 결국 '뼈본(Born-to-be) 귀족'들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 말이죠.
흥미로운 건 이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피츠제럴드가 죽고 나서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이토록 잘 묘사한 작품이 없다며 뒤늦게 재평가받았다고 해요. 우리 삶도 비슷하지 않나요? 당시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고 대단한 일인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저 한 장의 사진이나 기억으로 남는 일들이 많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개츠비가 과거를 돌릴 수 있다며 소리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속으로 외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때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어" 같은 미련 말이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밤이 깊었네요. 베란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저 멀리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이 깜빡거립니다. 개츠비에게는 그토록 간절했던 초록색 불빛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조명일 뿐이겠죠. 저는 오늘 개츠비를 보며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의 불빛을 쫓느라, 지금 내 발등을 비추는 작은 손전등 빛을 놓치지는 말자고요. 위대하다는 건 어쩌면 대단한 부를 쌓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진심을 끝까지 믿었던 그 무모함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초록색 불빛'은 지금 어디쯤 있나요? 혹시 너무 멀리 있는 걸 잡으려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손을 놓치고 계신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보셨으면 좋겠네요. 저도 이제 비어버린 캔을 분리수거하고, 내일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개츠비처럼 화려한 꿈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일 아침에는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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