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진 진짜 이야기, '위대한 쇼맨'의 실화는 어땠을까

영화 위대한 쇼맨 포스터 이미지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진 진짜 이야기, '위대한 쇼맨'의 실화는 어땠을까

사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건 어느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퇴근길에 붕어빵 2,000원어치를 사 들고 품에 안은 채 집에 들어왔는데, 집 안 공기가 너무 썰렁하더라고요. 보일러 온도가 올라가길 기다리면서 TV를 켰는데, 마침 휴 잭맨이 빨간 코트를 입고 "This is the greatest show!"라고 외치며 춤을 추고 있었죠. 붕어빵의 온기와 영화의 에너지가 합쳐져서 그랬는지, 그날 밤엔 자려고 누워도 귓가에 노래가 맴돌더라고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문득 궁금해졌어요. "정말 저렇게 낭만적이고 정의로운 쇼맨이었을까?" 하는 의구심 말이죠. 제가 원래 좀 의심이 많거든요. 예전에 친구랑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겼을 때도, 겉으로 보이는 웃음 뒤에 다른 속마음이 있진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 속 바넘의 지나친 낙천주의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밤새 찾아봤던, 영화보다 더 독하고 현실적인 P.T. 바넘의 진짜 실화 이야기를 좀 들려드릴까 해요.

박제된 환상과 실제 바넘의 지독한 비즈니스

영화 속 바넘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따뜻한 리더로 그려지죠. 하지만 실제 역사 속의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T. Barnum)은 사실 지독할 정도로 영리한 '사기꾼'에 가까운 사업가였습니다. 영화 속 감동적인 장면들을 떠올리면 조금 배신감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처음엔 "아, 내가 속았구나" 싶어서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마치 작년 추석 때 조카들에게 주려고 산 장난감이 알고 보니 건전지도 안 들어가는 모형이었을 때의 그 황당함 같았달까요.

실제 바넘이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건 '조이스 헤스'라는 흑인 노예 여성을 전시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는 그녀가 조지 워싱턴의 간호사였으며 나이가 무려 161세라고 속여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았어요. 심지어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부검 과정을 유료 관객들에게 공개하는 잔인함을 보였죠. 영화 속에서 수염 난 여성이나 키 작은 장군과 함께 춤을 추던 그 로맨틱한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죠? "사람들은 속고 싶어 한다"라는 말을 남겼던 그답게, 그는 대중의 호기심을 돈으로 바꾸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 시대에 갈 곳 없던 이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구경거리'로 만들었을지언정, 그들이 사회의 그늘에서 굶어 죽지 않게 돈을 벌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건 사실이니까요. 이게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선의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준 셈이니까요. 마치 제가 예전에 억지로 맡았던 프로젝트가 결과적으로는 후배들에게 좋은 경력이 됐던 것처럼, 세상 일은 참 흑과 백으로 나누기 어렵다는 걸 바넘의 삶을 보며 다시금 느낍니다.

제니 린드의 순수함과 바넘의 야망이 충돌하던 지점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관객을 홀렸던 '스웨덴의 나이팅게일' 제니 린드, 기억하시나요? 영화에서는 바넘과의 미묘한 로맨스 기류가 흐르다 갈등이 폭발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재로는 전혀 달랐답니다. 제니 린드는 실제로도 굉장히 고결하고 기부 활동에 열심이었던 성녀 같은 인물이었어요. 그녀는 바넘의 '돈 냄새' 나는 마케팅 방식을 견디다 못해 계약을 파기하고 스스로 순회공연을 이어나갔죠. 바넘은 그녀를 이용해 상류사회로 진입하고 싶어 했지만, 그녀에게 음악은 돈보다 훨씬 소중한 가치였던 거예요.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살면서 '가치관의 충돌' 때문에 소중한 인연을 놓쳐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예전에 정말 좋아하던 동료가 있었는데, 성과를 내는 방식이 저와 너무 달라서 결국 멀어지게 됐거든요. 그때 그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느꼈던 씁쓸함이 영화 속 제니 린드가 무대를 떠날 때 바넘이 느꼈을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독자 여러분,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욕망만큼은 진짜인 것 같아요. 바넘이 불타버린 극장 앞에서 망연자실해 할 때, 저는 이상하게 통쾌함보다는 "결국 저 사람도 나처럼 인정받고 싶어서 발버둥 치던 인간이었구나" 하는 연민이 먼저 들더라고요. 비록 방식은 잘못되었을지 몰라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본 사람이라면 그가 느꼈을 상실감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도 혹시 지금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계신가요? 그 과정에서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돌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사기꾼인가 예술가인가, P.T. 바넘의 실제 얼굴을 마주하다

영화 '위대한 쇼맨'은 실존 인물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 역사는 영화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두운 면이 많답니다. 사실 실제 바넘은 영화 속 휴 잭맨처럼 낭만적인 인물이라기보다, 지독할 정도로 영리한 사업가였거든요. 그가 19세기 미국에서 선보였던 쇼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조작'과 '착취'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조지 워싱턴의 간호사였다고 주장하며 161세라고 속인 노예 여성을 전시하거나, 원숭이 상체와 물고기 하체를 이어 붙인 가짜 인어를 보여주는 식이었죠.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바넘이 스스로를 '속임수의 왕'이라고 칭하면서도, 대중이 그 속임수를 즐기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는 "사람들은 속고 싶어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건 현대 마케팅의 시초가 되는 '노이즈 마케팅'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비평가 베넷이 바넘의 쇼를 "가짜"라고 비난하자, 바넘이 "사람들은 웃으러 오는 겁니다"라고 맞받아치는 장면은 실제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죠.

특히 영화에서 아름답게 묘사된 '제니 린드'와의 에피소드도 실제와는 좀 다릅니다. 실제 제니 린드는 바넘의 상업적인 행태에 질려 계약을 파기했고, 영화 같은 로맨스 기류는 전혀 없었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란 감독... 아, 아니죠,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은 이 인물을 '꿈'과 '희망'의 상징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실제 바넘이 어떤 사람이었든 간에, 그가 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역사적인 팩트와 영화적인 상상력을 비교해보며 보는 것도 이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싶네요.

영화관을 나오면서 듣던 'A Million Dreams'의 가사가 아직도 선명하네요. 영화는 바넘의 어두운 면을 지우고 눈부신 조명만 비췄지만, 저는 오히려 그 어둠을 알고 나서 이 영화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어요. 우리 모두에겐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박제된 피지 인어' 같은 비밀 하나쯤은 있잖아요?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쇼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제가 이 영화의 실화를 공부하며 내린 결론입니다. 오늘 밤엔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마치 무대 조명처럼 보이네요. 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저는 어떤 쇼를 보여주고 있는지, 또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신지 궁금해집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 영화를 보면서 "이건 너무 미화된 거 아냐?"라고 의심해보신 적 있나요? 아니면 실화를 알고 나서 영화가 다르게 보이시나요? 여러분의 솔직한 생각이 듣고 싶네요.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쇼라면, 적어도 우리는 관객보다는 주인공으로서 더 즐겁게 춤춰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번에는 또 다른 영화 속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들고 찾아올게요. 그때까지 각자의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