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마일, 천사도 사형을 당하나요? 초록색 복도 위에서 마주한 기적과 상처

영화 그린마일 포스터 이미지


천사도 사형을 당하나요? 초록색 복도 위에서 마주한 기적과 상처

오늘 제 기분은 마치 아주 오래된 일기장 갈피에 끼워두었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만 같아요. 이제는 바스라질 듯 말라버려서 손만 대도 가루가 될 것 같은데, 그걸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설레던 기억만큼은 여전히 코끝에 맴도는 그런 상태 말이에요. 사실 저는 어제 오후에 연차를 내고 조금 일찍 집으로 향했거든요.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 핀 이름 모를 들꽃들을 보는데,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그 작은 생명들이 어쩐지 오늘따라 너무 애처롭고 귀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우리는 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항상 늦게야 발견하게 될까?” 하는 철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어요. 대학교 후배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자기 고민을 한참 털어놓더라고요. "선배, 세상은 왜 이렇게 착한 사람한테만 가혹할까요?"라는 그 질문에 선뜻 답을 못 해주고 전화를 끊었는데, 마음이 한참이나 찝찝했거든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을이 지는 차창 밖 풍경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아주 오래전에 봤던 '존 커피'의 그 슬픈 눈망울이 떠올랐습니다. 덩치는 산만한데 어둠을 무서워하던 그 거구의 사형수 말이에요.

집에 도착해서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은 거실에 앉아 이 영화를 다시 틀었습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도, 냉장고의 웅웅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방 안에서, 저는 다시 한번 '그린 마일'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세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이 평소엔 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어제는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깊게 빠져들었거든요. 톰 행크스의 젊은 시절 얼굴을 보며 "아, 저 사람도 저렇게 젊었었지" 하고 혼잣말을 내뱉기도 하면서요.


타인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낸다는 것, 내 마음속 낡은 흉터가 아려올 때

영화 속에서 존 커피가 폴의 요도염을 치료해주거나, 죽어가는 쥐 '징글스'를 살려내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자꾸만 작년 겨울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더라고요. 길을 가다 추위에 떨고 있는 새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살려보겠다고 수건으로 감싸고 따뜻한 곳으로 옮겼지만 결국 제 손안에서 숨을 거두었거든요. 그때 느꼈던 그 작고 가냘픈 심장의 떨림과, 생명이 꺼져갈 때의 그 서늘한 기운이 존 커피가 타인의 고통을 빨아들일 때 뱉어내던 그 검은 가루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존은 자기가 살린 생명만큼, 혹은 자기가 대신 짊어진 고통만큼 스스로가 닳아 없어지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

코브가 꿈속에서 아내를 보며 고통받듯, 폴 역시 존 커피라는 '신의 기적'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몸서리칩니다. 사실 저도 살면서 "이게 옳은 건가?" 싶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회사에서 정말 성실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퇴사해야 했던 동료의 인사를 받을 때나, 누군가의 진심을 알면서도 차마 들어줄 수 없었던 순간들 말이에요.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영화 속 폴의 고뇌와 겹쳐지면서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습니다. "나중에 내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왜 나의 기적을 죽였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라는 폴의 대사는 정말이지 평생 잊지 못할 명대사입니다.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참 이해하기 힘들면서도 슬프네요. 존 커피는 왜 그렇게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을까요? 단순히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는 생각보다, 세상에 가득 찬 미움과 고통을 느끼는 게 너무 지쳐서 차라리 쉬고 싶다는 그의 말에 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우리도 가끔 그렇잖아요. 뉴스만 틀면 나오는 끔찍한 소식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날 선 말들... 그런 것들을 매일 마주하며 살다 보면 우리 마음도 존 커피처럼 "매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머릿속에서 유리 조각처럼 박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으니까요. 특히 델라크루아가 사형당할 때 퍼시의 악랄한 장난으로 고통스럽게 타 죽는 장면은,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눈을 질질 감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복도는 어떤 색인가요? 마지막 순간에 건네는 인사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한동안 거실 불을 켜지 못했습니다. 108살이 된 폴이 여전히 살아있는 쥐 징글스에게 옥수수빵을 떼어주는 장면을 보며, 오래 산다는 것이 결코 축복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소중한 사람들이 먼저 떠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장수(長壽)가 어쩌면 신의 기적을 죽인 대가라는 폴의 독백이 너무나도 차갑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달았던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 가방 속에 있던 낡은 펜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입학 선물로 주셨던, 이제는 잉크도 나오지 않는 낡은 만년필이죠. 이게 저만의 '토템'이자 기억의 조각인 셈이에요. 너무 지치거나 세상이 미워질 때 그 펜의 매끄러운 촉감을 느껴봅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도를 해줬었지"라는 사실이 떠오르며 비로소 숨이 트이거든요. 존 커피가 사형 집행 전 마지막으로 본 영화 속 춤추는 남녀의 모습처럼, 우리에게도 삶을 버티게 하는 아주 사소하고 아름다운 장면 하나쯤은 다들 가슴속에 품고 살잖아요.

여러분에게는 어떤 '그린 마일'이 있나요? 어쩌면 우리가 매일 걷는 출근길 복도일 수도 있고,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가는 현관 앞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속 사형수들은 죽음을 향해 걷지만, 우리는 삶을 향해 걷습니다. 하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여행자이자 사형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절 어둠 속에 두지 마세요(Don't put me in the dark)"라고 울먹이던 존의 부탁은, 사실 우리 모두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간절한 외침 아닐까요?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공포,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외로움 말이에요.


지독한 현실 너머의 진실, 스티븐 킹이 던진 묵직한 돌직구

이 영화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은 공포 소설의 거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쇼생크 탈출'이나 이 '그린 마일'처럼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드라마를 쓸 때 그의 진가가 더 빛나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될 때 한꺼번에 나온 게 아니라, 마치 드라마 시리즈처럼 한 달에 한 권씩 총 6권의 얇은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이죠. 독자들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미치게 만들었던 그 집요함이 영화의 촘촘한 구성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CG를 쓰기보다 실제 같은 세트와 배우들의 감정선에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거구의 존 커피를 연기한 마이클 클라크 덩컨이 실제로는 톰 행크스나 다른 배우들과 키 차이가 그렇게 압도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앵글과 가구 배치를 통해 그를 거대한 '신적 존재'처럼 보이게 만든 연출력은 지금 봐도 경이롭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느끼는 그 묘한 위압감과 따뜻함의 공존은 바로 이런 섬세한 계산에서 나온 거예요.

더 흥미로운 건, 존 커피(John Coffey)의 이니셜이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와 같다는 점입니다.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타인의 병을 치유하며 결국 사형당하는 그의 삶은 명백한 성경적 오마주죠. 하지만 감독은 이를 종교적으로 강요하기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치환해냅니다. 아리아드네가 미로를 설계하듯, 스티븐 킹과 다라본트 감독은 우리 마음속에 '죄책감'과 '용서'라는 거대한 미로를 설계해둔 셈이에요.

이제 글을 좀 맺어야겠네요. 베란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노을이 다 지고 어둠이 깔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다 됐네요. 책상 위에 놓인 다 식어버린 찻잔을 보며, 저도 오늘 하루 제 마음속의 그린 마일을 잘 걸어왔는지 되돌아봅니다. 거창한 기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건넬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하루였길 바라면서요.

여러분도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작은 기적 같은 순간을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요? 혹은 스스로의 무의식 속에 "오늘 참 수고했다"는 긍정적인 암시 하나를 툭 던져두는 것도 좋겠고요. 우리 삶의 복도가 무슨 색이든,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테니까요. 가방을 메는데 아까 만졌던 할아버지의 펜이 손에 걸리네요. 아, 이제 저는 다시 현실의 문을 열고 사랑하는 아이를 만나러 가봐야겠습니다. 여러분의 그린 마일 위에도 오늘은 꼭 따뜻한 햇살이 머물기를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