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위손, 안아주고 싶지만 상처 줄까 봐, 우리의 서툰 진심에 대하여

영화 가위손 포스터 이미지


아까 낮에 마트에 갔다가 계산대 옆에 놓인 작은 가위 하나를 봤는데, 그 평범한 물건이 왜 그렇게 마음을 콕 찌르던지요. 사실 오늘 제 기분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거든요.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그냥 남들 다 하는 '사회생활의 가면'을 쓰느라 기운이 다 빠진 날 있잖아요. 억지로 웃어주고, 속마음과는 다른 말들을 뱉어내고 집에 돌아오니 거울 속 제 모습이 너무 낯설더라고요. 그래서 어제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쟁여둔 캔맥주 하나를 땄습니다. 안주도 없이 소파에 앉아 멍하니 채널을 돌리다 멈춘 곳이 바로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이었어요. 어릴 적 명화극장에서 봤을 때는 그저 무서운 손을 가진 아저씨의 슬픈 동화인 줄만 알았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본 에드워드의 창백한 얼굴은 꼭 제 마음 같더라고요. 비좁은 세상에 섞이고 싶어 애쓰지만, 결국 내 안의 날카로운 부분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줄까 봐 머뭇거리는 그런 마음 말이에요.

"안아주고 싶지만 상처 줄까 봐, 우리의 서툰 진심에 대하여"

영화 속 에드워드가 킴을 안아주고 싶어 팔을 벌렸다가, 자기 손에 달린 날카로운 가위날을 보고 멈칫하며 "난 할 수 없어(I can't)"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는데 지난주에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지 못한 찝찝한 마음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저는 나름대로 위로한다고 건넨 말이었는데, 그 친구는 제 말이 가시처럼 느껴졌나 봐요. 저도 에드워드처럼 그저 온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제 서툰 말주변이나 날 선 감정들이 의도치 않게 상대방을 할퀴고 있었던 거죠.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가위손을 하나씩 품고 사는 것 같아요. 진심을 전하고 싶은데 표현 방식이 너무 거칠거나, 혹은 내 방어기제가 너무 강해서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 버리는 그런 가위손 말이에요.

에드워드가 마을 사람들의 정원을 조각하고 머리를 만져주며 환영받을 때, 저는 잠깐이나마 희망을 가졌습니다. '아, 저렇게 남들과 다른 재능이 있으면 결국 받아들여지는구나' 하고요. 하지만 사람들의 호의는 너무나 가벼웠습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맞을 때만 "특별하다"고 치켜세우다가, 조금만 불편해지면 금세 "괴물"이라며 등을 돌려버리죠.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셨던 붕어빵 봉투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밤이었습니다. 그때는 세상이 참 단순하고 따뜻해 보였는데,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사회는 영화 속 파스텔 톤 마을처럼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참 차갑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에드워드가 얼음 조각을 깎으며 눈을 만들어내던 그 눈부신 순간조차,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에 불과했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이름

영화가 끝나고 나서 창밖을 보니 비가 눈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소복하게 눈이 쌓인 기분이었습니다. 킴이 할머니가 되어 손녀에게 에드워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아. 눈이 내리고 있으니까"라고 말할 때,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혹시 저처럼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잘 지내길 바라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지는 않으셨나요? 사실 줄거리가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후반부의 그 몽환적인 영상미에 취해 있었는데, 마지막에 홀로 성안에서 얼음을 깎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정말 지독하게 아름답더라고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때로는 그 사람을 위해 내 곁을 내주는 게 아니라 먼발치에서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드워드는 평생 킴을 그리워하며 차가운 얼음을 깎아 따뜻한 눈을 만들었고, 킴은 그 눈을 맞으며 에드워드의 사랑을 기억하죠. 두 사람은 몸은 떨어져 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매개로 영원히 연결되어 있는 셈이에요. 여러분에게도 그런 '눈' 같은 존재가 있나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오해 때문에 멀어졌거나, 환경이 달라서 끝내 닿지 못했던 소중한 인연 말이에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혹시 자신의 '가위손'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거나, 혹은 상처받아 숨어 계신 분이 있다면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꺼내 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결핍이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걸 에드워드가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팀 버튼의 외로움이 빚어낸 걸작,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이 영화가 유독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건, 감독인 팀 버튼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투영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이 영화의 영감은 팀 버튼이 10대 시절에 그린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됐습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던 소년 팀 버튼은 교외 마을에서 자라며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겉돌았다고 해요. 그가 느꼈던 그 고독함과 '나만 다르다'는 이질감이 바로 가위손을 가진 에드워드로 탄생한 거죠. 어찌 보면 에드워드는 소통하고 싶지만 소통하는 법을 몰랐던 예술가의 초상화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에서 발명가 할아버지로 나오는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가 실제로 팀 버튼의 우상이었다는 점이에요. 영화 속에서 발명가가 에드워드에게 진짜 '손'을 주지 못하고 죽는 장면은 실제로도 빈센트 프라이스의 마지막 출연작이 되면서 더 비극적인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또한 조니 뎁은 이 역할을 위해 대사를 최소화하고 오직 눈빛과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으로만 에드워드의 슬픔을 표현했다고 하죠. 현란한 말잔치보다 때로는 침묵이 더 큰 진실을 말해준다는 걸 조니 뎁은 이미 그때 알고 있었나 봅니다. 제작진은 파스텔 톤의 예쁜 마을과 대비되는 거무스름한 고딕 성을 통해 사회의 위선과 개인의 순수를 극명하게 보여주려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시각적인 전율을 주는 것 같아요.

다 마신 맥주 캔을 찌그러뜨리는데 가벼운 소리가 나네요. 제 마음의 짐도 이 캔처럼 가벼워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에드워드는 지금도 그 추운 성안에서 누군가를 위해 얼음을 조각하고 있을까요? 영화관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저마다 다르듯, 이 영화를 본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각기 다른 모양의 눈송이가 내려앉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내일 출근을 위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려 합니다. 비록 현실의 제 손에는 날카로운 가위 대신 뻣뻣한 볼펜이 쥐어져 있겠지만, 마음만큼은 에드워드처럼 누군가에게 부드러운 눈송이를 뿌려줄 수 있는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오늘 밤, 여러분의 꿈속에는 부디 상처 주는 가위 대신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손길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제 무거운 눈꺼풀을 닫고, 그 환상적인 얼음 나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볼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