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속에 숨겨진 가장 눈부신 우주, 영화 <원더>가 내게 건넨 다정한 위로

영화 원더 포스터 이미지

오늘 제 기분은 꼭 잉크가 덜 마른 수채화를 조심스레 말리는 것처럼 묘하게 설레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사실 오늘 오후에 거래처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광역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길게 늘어선 퇴근길 차량 행렬을 보며 묘한 이질감을 느꼈거든요. 서울 도심의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번쩍이는 자동차들은 마치 거대한 수족관 속에 갇힌 희귀어들처럼 보였습니다. '저 차를 탄 사람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혹시 나처럼 지금 이 공간이 현실이 아닌 것 같다는 착각을 하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참견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이 영화 <원더>(Wonder)를 다시 꺼내 든 건, 오늘 퇴근길 지하철역 근처 초등학교 앞에서 본 한 아이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책가방을 메고 친구들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던 그 작은 뒷모습이 어찌나 위태로우면서도 씩씩해 보이던지... 그 장면이 잔상처럼 남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이 영화를 재생했습니다.

저는 지금 퀀트 트레이딩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거든요. 하루 종일 숫자가 요동치는 차트와 냉정한 인터페이스를 만지다 보면, 가끔은 제가 보고 있는 이 화면들이 사람들의 진짜 감정을 얼마나 무디게 만들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속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세상의 시선을 피하려 우주비행사 헬멧을 쓰고 걷던 그 모습이, 매일 모니터라는 방어막 뒤에 숨어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제 모습과 겹쳐 보여 마음이 조금 저릿했습니다.

내 안의 헬멧을 벗겨준 27번의 수술, 그리고 지독한 성장통

어기는 남들과 조금 다른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27번의 수술을 견뎌냈지만, 사람들의 수군거림까지 수술할 수는 없었죠. 영화 속에서 어기가 처음 학교에 발을 내디딜 때의 그 공포를 보며, 저는 10년 전 제 첫 출근 날이 떠올랐습니다. 낯선 사무실, 나를 평가하는 듯한 동료들의 시선, 실수할까 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던 그 압박감... 물론 어기가 겪은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다름'을 인정받아야 하는 장소에 던져진 인간의 본능적인 떨림은 참 닮아 있더라고요.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참 이해가 안 가면서도 경이로워요.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 때로는 칼날처럼 날카로울 수 있다는 사실 말이죠. 사실 줄거리가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그 맑은 눈망울에 취해 있었습니다. 분장 너머로 느껴지는 그 아이의 호흡에 중간중간 일시 정지를 누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거든요.] 특히 제가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은 어기가 할로윈 때 잭 윌의 진심을 오해하고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가장 믿었던 친구가 뒤에서 자신을 욕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무너짐... 예전에 저도 대학 시절, 친하다고 믿었던 동기가 제 포트폴리오를 두고 "운이 좋아서 잘 된 것뿐"이라며 험담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날 저녁,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 냄새를 맡으며 식탁에 앉아 있는데 목이 메어 도저히 밥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사벨(줄리아 로버츠)이 어기를 안아주며 "네 얼굴은 네가 어디로 가는지 보여주는 지도와 같아"라고 말해줄 때, 그 위로가 마치 제 낡은 자존감 위로 내려앉는 것처럼 따뜻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어기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동생에게 모든 관심을 뺏긴 비아의 소외감, 친구를 지키고 싶지만 집단 따돌림이 무서운 잭 윌의 비겁함까지... 이 모든 감정의 결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제가 다 숨이 약간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결핍을 안고 살아가고, 그 결핍을 숨기기 위해 보이지 않는 '헬멧'을 쓰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절함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선택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거실의 불을 켜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졸업식 장면에서 어기가 전교생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메달을 목에 걸 때 느껴지던 그 공기의 진동이 너무나도 미묘했거든요. 그걸 단순히 성공이라고 단정 짓기엔 그가 견뎌온 외로움이 너무 컸고, 감동이라고 부르기엔 우리 사회가 그에게 준 상처가 너무나 선명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누군가의 아주 작은 다정함 덕분에 하루를 버텨본 적 있으신가요? 지난주에 디자인 시안이 연달아 반려되어 축 처진 어깨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배달 기사님 한 분이 "오늘 날씨 참 좋죠? 힘내세요!"라고 툭 던진 한마디에 묘하게 코끝이 찡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브라운 선생님이 칠판에 적었던 격언처럼, '옳음'과 '친절함' 사이에서 갈등할 때 우리가 '친절함'을 선택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어기 같은 아이들이 헬멧을 벗고 웃을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이 영화는 감정을 결코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찰나의 시선, 데이지(반려견)를 만지는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 같은 아주 미묘한 신호들로 모든 것을 전달합니다. 대사가 멈춘 순간에도 감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거든요.] 사랑이란 건 결국 함께한 시간의 길이보다, 서로를 통해 내가 얼마나 깊게 변화했는가로 측정되는 게 아닐까요. 어기를 통해 잭 윌은 용기를 배웠고, 이사벨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으며, 줄리안조차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관계는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가지만 평생의 나를 지탱하는 뼈대가 되기도 합니다. 사회적 시선이나 선입견 따위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오직 진실한 마음만이 공유하는 그 고유한 영토 말입니다.

타이거릴리(Tigerlily)의 선율에서 시작된 팩트, 그리고 예외적인 기록들

영화 <원더>가 우리에게 준 이 깊은 울림은 사실 아주 우연한 팩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작 소설의 작가 R.J. 팔라시오는 어느 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안면 기형을 가진 아이를 보고 자신의 어린 아들이 울음을 터뜨릴까 봐 서둘러 자리를 피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해요. 그 순간 자신의 행동이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을까 봐 깊은 자책감을 느꼈고, 그날 밤 나탈리 머천트의 노래 'Wonder'를 들으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도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어기 역을 맡은 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실제 안면 기형 환자들의 모임에 참석해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들의 고충을 깊이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하네요. 그가 착용했던 특수 분장은 실리콘과 철망 등으로 제작되어 착용에만 무려 1시간 30분이 걸렸는데, 어린 배우가 그 답답함을 견디며 연기했다는 사실이 영화 속 어기의 인내심과 닮아 있어 더욱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원더>는 관객 평점의 지표인 시네마스코어(CinemaScore)에서 보기 드문 'A+' 등급을 받은 작품입니다. 영화 역사상 100여 편 남짓한 영화만이 받은 이 기록은, 대중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얼마나 열광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죠. 2017년 개봉 당시 제작비 2,000만 달러로 시작해 무려 15배가 넘는 3억 1,500만 달러의 전 세계 수익을 올린 기록은 '따뜻한 이야기는 힘이 없다'는 상업 영화계의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 사건이었습니다.

창문을 닫으려는데 바깥엔 여전히 축축한 습기가 감돌고 있고, 멀리서 차가 지나가며 물웅덩이를 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마음속에 남는 것들은 대개 이렇게 조용하고 나직하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영화 <원더>가 남긴 그 미지근한 온도가 제 안에서 쉽게 식지 않는 이유는, 아마 저 또한 누군가에게 어기처럼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이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살아가고, 어떤 이는 마음이 일그러진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건 헬멧 밖으로 손을 내미는 용기겠죠. 영화 속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 모두는 적어도 인생에 한 번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살아낸 당신에게 이 글이 작은 박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출근길에는 무표정한 모니터 대신, 저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조금 더 오래 바라봐야겠습니다. 그 눈 속에 숨겨진 각자의 우주를 응원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