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이즈본, 편의점 앞 주차장에서 부르던 노래와 내 방의 눅눅한 공기 사이
어제는 유난히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수입 맥주 네 캔을 만 원에 사 들고 들어왔는데, 신발도 안 벗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요즘 제 기분이 꼭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같았거든요.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이미 퀴퀴하게 변해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에요. 지난주에 친한 친구와 사소한 오해로 다투고 아직 화해하지 못한 찝찝한 마음까지 더해지니,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가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무심결에 리모컨을 돌리다 멈춘 곳이 바로 '스타 이즈 본'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왜 보게 됐냐면요, 사실 아주 유치한 이유 때문이었어요. 화면 속 브래들리 쿠퍼의 그 지저분한 수염과 충혈된 눈이 꼭 거울 속 제 모습 같았거든요. 화려한 톱스타라는데 왜 저렇게 처량해 보일까 싶어 홀린 듯이 보기 시작했죠. 사실 줄거리가 잘 기억 안 날 정도로 초반 30분은 레이디 가가의 그 날 것 그대로의 얼굴에 압도당해 있었습니다. 화장을 지운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지 처음 알았거든요.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며 영화를 보는데, 잭슨이 앨리의 눈썹을 장난스레 만지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이 터졌어요. 아, 이 부분은 제가 다시 봐도 참 간질간질하더라고요. 세상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단 한 사람만 나를 '별'로 봐준다면, 그게 인생의 전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비가 와서 창문 여는 소리가 들리는 방 안에서, 잭슨의 낮은 목소리와 앨리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섞일 때마다 제 방 안의 공기도 조금씩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편의점 앞 주차장에서 부르던 노래와 내 방의 눅눅한 공기 사이
영화 속에서 잭슨과 앨리가 공연을 마치고 편의점 앞 주차장에서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앨리가 부끄러운 듯 자기가 쓴 노래 구절을 흥얼거릴 때, 잭슨이 그 가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그 순간이 저는 이 영화의 진짜 '심장'이라고 생각해요. 그 장면을 보는데 문득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셨던 붕어빵 봉투의 온기가 생각나더라고요. 별거 아닌 일상인데,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새삼 깨달았거든요.
사실 잭슨은 이미 모든 걸 가진 스타지만 속은 텅 비어 있고, 앨리는 가진 건 없지만 꿈으로 꽉 차 있잖아요. 두 사람이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 꼭 작년 여름 우리 집 천장이 샜던 기억과 연결되더라고요. 비가 새는 건 비극인데, 그걸 막으려고 온 가족이 대야를 들고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 밤은 이상하게 따뜻했거든요. 잭슨이 앨리를 무대로 불러내 'Shallow'를 함께 부를 때, 앨리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코를 가리고 무대로 나가는 그 모습은 정말... 아, 이 부분은 제가 몇 번을 돌려봐도 코끝이 찡해요.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죠. 사랑이 깊어질수록 잭슨은 점점 무너져가고 앨리는 빛나기 시작해요. 앨리가 그래미 상을 받는 영광의 순간에 잭슨이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는 정말 고개를 돌리고 싶을 만큼 비극적이었어요. 사실 저도 예전에 정말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를 해서 엉망이 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제 곁을 지켜주던 사람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함 때문에 오히려 화를 냈던 제 못난 모습이 잭슨에게 투영되더라고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그 처절한 실수들이 너무나 '사람 냄새' 나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가 이대로의 모습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여러분은 있으신가요?
영화가 끝나고 "I'll Never Love Again"이 흐를 때, 저는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잭슨이 떠나고 홀로 남은 앨리가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그 장면은, 단순히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사랑하는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영화는 시종일관 "우리의 모습을 이대로 기억하자"고 말하지만, 현실은 늘 우리를 변하게 만들고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잖아요.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어요. 여러분의 인생에서 잭슨 같은 존재는 누구였나요? 혹은 누군가에게 앨리 같은 빛이 되어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지난주에 다퉜던 친구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미안해, 그냥 네 생각이 나서"라고요. 잭슨이 앨리에게 해준 건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를 끝까지 믿어준 것뿐이었잖아요. 우리 삶도 어쩌면 대단한 성공보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살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영화 속 잭슨은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만, 저는 그가 마지막까지 앨리의 빛을 지켜주려 했다고 믿고 싶어요. 비록 방법은 틀렸을지 몰라도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으니까요. 캔맥주 네 캔을 다 비울 때쯤 되니, 방 안의 눅눅한 공기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앨리의 마지막 노래가 제 귓가에 계속 맴돌더라고요. 여러분도 오늘 밤, 잊고 지냈던 소중한 사람에게 짧은 안부라도 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우리 모습 이대로 기억하자"는 영화의 대사처럼 말이에요.
브래들리 쿠퍼의 집요함과 레이디 가가의 '민낯'이 만든 기적
'스타 이즈 본'은 사실 1937년부터 시작해 벌써 네 번째로 리메이크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예요. 그런데 왜 유독 2018년의 이 작품이 우리 가슴을 이토록 울리는 걸까요? 그건 감독이자 주연인 브래들리 쿠퍼의 엄청난 고집 덕분입니다. 원래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비욘세를 주인공으로 찍으려고 했었대요. 하지만 브래들리 쿠퍼가 메가폰을 잡으면서 완전히 색깔이 바뀌었죠. 그는 잭슨 메인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실존 모델인 에디 베더(펄 잼의 보컬)와 함께 생활하며 목소리 톤을 한 옥타브 낮추는 훈련까지 했다고 하더라고요.
더 놀라운 건 레이디 가가입니다. 평소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유명한 그녀지만, 브래들리 쿠퍼는 첫 만남에서 그녀의 화장을 물티슈로 직접 지워버렸다고 해요. "완전한 민낯(Face-off)이 아니면 이 배역을 줄 수 없다"면서요. 덕분에 우리는 영화 초반, 코가 컴플렉스라며 수줍어하는 평범한 '앨리'의 얼굴을 만날 수 있게 된 거죠. 또한 영화 속 모든 공연 장면은 립싱크가 아닌 실제 라이브로 촬영되었습니다.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같은 실제 공연장의 열기를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관객들 앞에서 직접 노래를 불렀다니, 그 현장감이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게 당연한 결과였네요.
이 영화의 원제 앞에 붙은 관사 'A'에 주목해볼 필요도 있어요. 'The' 스타가 아니라 'A' 스타인 이유는, 하늘에 뜬 수많은 별 중 하나일 뿐인 우리가 서로를 발견할 때 비로소 특별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요. 3,6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전 세계에서 4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린 건,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런 진정성 있는 팩트들이 모여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탁기 다 돌아갔다는 알림음이 들리네요. 눅눅했던 빨래들을 하나씩 털어 건조대에 널면서, 저도 모르게 'Always Remember Us This Way'를 흥얼거립니다. 영화 속 앨리는 이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겠지만, 제 마음속엔 여전히 편의점 주차장에서 수줍게 노래하던 그 소녀로 남아있을 것 같아요.
요약하자면... 아차, 이런 딱딱한 말은 어울리지 않네요. 그냥 일기장을 덮듯, 혹은 영화관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의 혼잣말처럼 마무리하고 싶어요. 내일 아침 출근길엔 이어폰 너머로 앨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금 더 힘차게 걸어봐야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지금 자기 안의 빛을 잃어버렸다고 느끼시나요? 아니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가치를 잊고 계신 건 아닌가요? 오늘 밤, 캔맥주 한 잔과 함께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시길 추천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작은 별 하나가 다시 뜨기를 바라며 글을 줄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