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부자가 아닌 한 인간의 지도를 훔쳐보다, 영화 '워런 버핏 되기'

영화 워런 버핏 되기 포스터 이미지

오늘 오후에는 유치원에 간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 잠깐 시간이 남아서 근처 대학교 캠퍼스 벤치에 앉아 있었어요. 하필이면 수업 교대 시간이었는지 젊은 학생들이 활기차게 지나가는데, 다들 손에 전공 서적이나 태블릿을 들고 뭐가 그렇게 바쁜지 앞만 보고 걷더라고요. 저도 사실 아침부터 아이 등원시키고, 산더미 같은 집안일에 원고 마감까지 겹쳐서 마음이 참 조급했거든요. "나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차에, 예전에 저장해 뒀던 다큐멘터리 '워런 버핏 되기(Becoming Warren Buffett)'를 다시 꺼내 보게 됐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진 그 할아버지의 진짜 일상이 문득 궁금해졌거든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제 눈을 사로잡은 건 화려한 저택이나 슈퍼카가 아니었어요. 수십조 원을 주무르는 그 양반이 매일 아침 직접 차를 몰고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에 들러 3달러 남짓한 머핀을 사 먹는 모습이었죠. 주식 시장이 좋으면 조금 비싼 걸 먹고, 장이 안 좋으면 싼 걸 먹는다는 그 농담 섞인 진심이 왜 그렇게 인간적으로 느껴지던지요. 어제 제가 마트에서 1+1 행사 상품을 집어 들며 유통기한을 꼼꼼히 따지던 그 묘한 안도감이 떠올라서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워런 버핏이라는 인물이 우리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외계인이 아니라, 그저 자기만의 철저한 규칙을 사랑하는 고집 센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다가오더라고요.

사실 전 숫자에 참 약해요. 은행 앱을 열어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한숨이 먼저 나오고, 복잡한 주식 용어만 들으면 머리에 쥐가 나거든요.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가 투자 기법만 가르쳐주는 지루한 강의였다면 5분도 못 버티고 껐을 거예요. 그런데 이 영화는 버핏의 성공 비결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 더 집중하더라고요. 수학적인 천재성이 인간관계에서의 서투름과 어떻게 공존하는지, 그리고 그 공백을 채워준 아내 수잔 버핏과의 사랑 이야기가 나올 때는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습니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제가 잊고 살았던 '가장 소중한 자산'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거든요.

숫자로 쌓아 올린 성벽 안에 핀 소박한 들꽃 한 송이

워런 버핏의 삶을 들여다보며 가장 놀랐던 건 '일관성'이었어요. 그는 1958년에 3만 달러 조금 넘게 주고 산 오마하의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더라고요. 요즘처럼 조금만 돈이 생기면 더 넓은 집, 더 좋은 동네로 이사 가고 싶어 안달인 세상에서 그가 보여주는 정주(定住)의 태도는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작년에 집 전세금을 올려줘야 했을 때, 밤잠을 설쳐가며 무리해서라도 신축 아파트로 가야 하나 고민했었거든요. 그런데 버핏이 낡은 서재에서 오래된 책을 넘기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정말 갈망했던 게 '넓은 평수'였는지 아니면 그 안을 채울 '안정감'이었는지 자문하게 되더라고요.

영화 속에는 버핏의 평생 파트너인 찰리 멍거도 등장하죠. 두 노인이 나란히 앉아 서로를 신뢰하며 대화하는 장면은 참 부러웠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 믿지 마라", "비즈니스에 친구는 없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거든요. 실제로 믿었던 동료에게 뒤통수를 맞고 며칠을 앓아누웠던 적도 있고요. 하지만 버핏은 '가치 투자'라는 철학을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더라고요. 한 번 믿으면 끝까지 가는 그 묵직한 신뢰가 결국 그를 최고의 자리로 이끌었다는 점이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아, 이 대목에서 버핏이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투자 원칙을 배우는 애니메이션 장면이 나오는데, 솔직히 전 그 부분은 한 세 번쯤 돌려봤어요. 분명 쉬운 설명인데도 제 뇌가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나 봐요. 역시 숫자의 세계는 저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버핏의 아내 수잔에 대한 이야기는 이 다큐멘터리의 감정적 중심축이에요. 버핏은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천재였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는 빵점이었거든요. 수잔이 떠나고 나서야 그가 흘린 눈물을 보며, "세상의 모든 돈을 가졌어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있구나"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작년에 부모님 생신 때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달랑 하고 넘어갔던 제 모습이 겹쳐 보여서 가슴이 뜨끔하더라고요. 버핏이 말하는 '복리의 마법'은 돈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쌓아가는 관계의 밀도에도 해당한다는 사실을 이 할아버지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진짜 '가치'에 대한 질문

영화 중반부에 버핏이 학생들에게 강연하는 장면이 나와요. 거기서 그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오직 하나뿐이고, 이건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유일한 자산이다"라고 말하죠. 이 평범한 문장이 왜 그렇게 마음을 울리던지요. 전 그동안 제 몸을 소모품처럼 써왔거든요. 마감 시간에 쫓겨 끼니를 거르고, 스트레스는 초콜릿 같은 단것으로 풀면서 제 자신을 돌보는 데는 너무 인색했어요. 버핏은 자동차를 평생 딱 한 대만 가질 수 있다면 어떻게 관리하겠냐고 묻는데,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이라는 소중한 차를 진흙탕 속에 방치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여러분도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 나서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어요. 마침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데, 그 오렌지빛 하늘이 버핏이 마시는 코카콜라 색깔처럼 예쁘더라고요. 최고의 투자자라는 버핏이 결국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주식을 사야 한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인생의 '에퀴티(지분)'를 어디에 투자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사실 말이죠.

사실 버핏의 이런 철학이 현대인들에게는 조금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요즘은 워낙 '빠른 수익'과 '자극적인 성공'이 대세니까요. 하지만 저는 버핏이 60년 넘게 같은 사무실로 출근하며 낡은 책상을 지키는 그 모습에서 진정한 멋을 느꼈습니다. 제가 매일 아이를 데리러 가고, 밥을 차리고, 글을 쓰는 이 반복적인 일상도 버핏의 투자처럼 언젠가는 커다란 복리가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요? 비록 지금 제 통장 잔고는 버핏의 0.0001%도 안 되겠지만, 아이의 웃음소리와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라는 가치만큼은 저도 버핏 못지않은 부자라고 자부하고 싶어지네요.

오마하의 현인이 남긴 기록, 그 이면의 팩트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부자의 성공기를 넘어, HBO라는 거대 자본과 피터 쿤하르트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만나 탄생한 기록물이에요. 제작진은 버핏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뒤져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의 어린 시절 사진과 영상을 발굴해 냈죠. 특히 그가 어릴 때부터 숫자에 집착하며 신문을 배달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는 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가 아니라, 지독할 정도의 성실함으로 무장한 노력가였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버핏은 지금도 하루의 80%를 독서에 할애한다고 해요.

그의 투자 철학인 '가치 투자'의 뿌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 '현명한 투자자'에 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버핏이 그레이엄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적 분석과 기업의 '해자(Moat)'를 중시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어떻게 구축했는지도 보여줍니다. 특히 2006년, 자신의 전 재산 85%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던 세기의 결단 뒤에는 아내 수잔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도 팩트로 제시되죠. 부의 축적보다 부의 배분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된 그의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돈의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영화 속에는 버핏이 앓았던 '대중 연설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요. 세계적인 부자도 우리처럼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무서워해서 데일 카네기 코스를 수료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죠.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은 버핏을 우상화하기보다, 단점을 극복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 묘사하는 데 큰 공헌을 합니다. 영화 비평가들이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낸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에요. 성공한 자의 화려한 결과물보다 그 과정에 담긴 인간적인 고뇌와 사실들을 담백하게 엮어냈기 때문입니다.